[經] 공(空)․무상(無相)․무작(無作)삼매를 행한다. |
[문] 전에는 말하기를 “보살들이 모든 삼매를 얻었다” 하더니, 어찌하여 다시 말하기를 “공․무상․무작삼매를 행한다” 하는가? |
[답] 전에는 삼매의 이름만을 말했을 뿐 그 모습은 말하지 않았으므로 이제 그 모습을 말하기 위하여 공․무상․무작의 삼매를 행한다 했다.
어떤 사람이 공․무상․무작의 삼매를 행하면 이는 실상(實相)삼매를 얻은 사람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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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게송이 있다. |
계를 지니어 청정하다면 |
이를 진실한 비구라 부르고 |
능히 공을 잘 관찰한다면 |
이를 삼매를 얻었다 한다. |
부지런히 정진을 쌓으면 |
도를 행하는 사람이라 부르고 |
만약에 열반을 얻었으면 |
이를 진실한 즐거움이라 한다. |
[論] 이미 등(等)과 인(忍)을 얻었다. |
[문] 무엇을 등이라 하며, 무엇을 인이라 하는가? |
[답] 두 가지 등(等)이 있으니, 중생등(衆生等)과 법등(法等)이다. 인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중생인(衆生忍)과 법인(法忍)이다. |
무엇을 중생등이라 하는가? 곧 모든 중생들에 대해서 평등한 마음ㆍ평등한 생각ㆍ평등한 사랑ㆍ평등한 이익을 주는 것을 중생등이라 한다. |
[문] 자비의 힘 때문에 모든 중생에게 평등하게 생각할지언정 평등하게 관찰해서는 안 된다. |
[221 / 805] 쪽 |
왜냐하면 보살은 진실한 도를 행하여 뒤바뀌지 않고 법의 모습 그대로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찌 착한 사람과 착하지 않은 사람, 대인과 소인, 축생을 동일하게 보는가? 착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진실로 착하지 못한 모습이 있고 착한 사람에게는 진실로 착한 모습이 있으며, 대인과 소인, 그리고 축생도 그러할 것이다. |
마치 소의 모습은 소에게 있고, 말의 모습은 말에게 있어서 소의 모습이 말 가운데 있지 않고 말의 모습이 소 가운데 있지 않는 것과 같으니, 말이 소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중생들도 각기 제 모습을 지녔거늘 어찌 동일하게 평등이 관찰하고도 전도(顚倒)에 떨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
[답] 만일 착한 모습과 착하지 않은 모습이 진실이라면 보살은 응당 전도에 떨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법의 모습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
모든 법은 진실로 착한 모습도 아니요 진실로 착하지 않은 모습도 아니며, 많은 모습도 아니요 적은 모습도 아니며, 인간도 아니요 축생도 아니며, 같음[一]도 아니요 다름[異]도 아니니, 그러므로 그대의 비난은 옳지 못하다. |
모든 법의 모습을 말씀한 게송에 이런 것이 있다. |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
단절도 아니요 영원함도 아니며 |
같음도 아니요 다름도 아니며 |
감[去]도 아니요 옴[來]도 아니다. |
인연으로 생긴 법은 |
모든 희론을 멸하나니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기에 |
나 이제 마땅히 말해야 하리. |
또한 온갖 중생 가운데 갖가지 모습에 집착하지 않아 중생의 모습[衆生相]이나 비어 있는 모습[空相]이 동등한 것으로 다르지 않다고 이처럼 관찰함을 일컬어 중생등이라 한다. |
[222 / 805] 쪽 |
만일 어떤 사람이 여기에 대하여 마음이 평등해져서 걸림이 없다면 그는 곧장 물러서지 않는 경지[不退]에 들게 된다. 이것을 등과 인을 얻었다 하는데, 등과 인을 얻은 보살은 온갖 중생에게 성내지 않으며 그들로 인해 괴로워하지 않는다. 마치 자애로운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함과 같으니, 게송에서 설하는 바와 같다. |
말소리는 메아리 같고 |
몸의 행위는 거울의 모습 같다 보니 |
이렇게 관찰할 수 있는 사람은 |
무엇인들 참지 못하랴. |
이것을 중생의 등인이라 하는 것이다. |
무엇을 법의 등과 인이라 하는가?
곧 착한 법과 착하지 못한 법, 유루의 법과 무루의 법, 유위의 법과 무위의 법 등 이와 같은 모든 법에 대해서 불이(不二)의 법문에 들고, 실다운 법상(法相)의 문에 든다.
이와 같이 든 뒤에 여기에서 모든 법의 실상에 깊이 들 때에 마음으로 확인[忍]하여 무쟁(無諍)ㆍ무애(無礙)에 든다면 이를 법의 등인이라 한다. |
이러한 게송이 있다. |
모든 법은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
나지 않는 것도 아니고 멸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
생멸하지도 않으면서 생멸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
생멸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
생멸하지 않는 것이 아닌 것도 아니다. |
이미 해탈을 얻어[단주(丹註)에 말하기를 ‘삿된 소견을 여의게 되는 까닭에 해탈이라 한다’ 하였다.
공(空)과 비공(非空)[단주에 말하기를 ‘공에도 집착하지 않는 까닭에 비(非)라 한다’ 하였다.]이라는 이러한 모든 희론을 버리고 없애어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불법에 깊이 들어가서 마음에 걸림이 없으며, 흔들리거나 |
[223 / 805] 쪽 |
물러남이 없는 것을 무생인(無生忍)이라 한다. 이는 불도를 돕는 첫 문인 까닭에 ‘이미 등과 인을 얻었다’ 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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