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

[스크랩] 대지도론 172. 숲속의 작은 비구여. 어찌하여 게으름을 피우느냐?

수선님 2019. 1. 27. 12:37

또한 보살은 세 가지 생각을 한다.

 

‘내가 하지 않으면 과보를 얻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하지 않으면 다른 곳에서 오지 않는다. 내가 하면 끝내 잃지는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반드시 정진을 닦나니, 불도를 위하는 까닭에 부지런히 닦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어떤 이가 조그마한 아란야에서 혼자 좌선을 하다가 게으름을 일으켰다.

숲 속에 신이 있었는데 그는 부처님의 제자였다.

 

어떤 시체의 뼈 속에 들어가서 노래하고 춤추며 와서는 이런 게송을 읊었다.

  
  숲 속의 작은 비구야,
  어째서 게으름을 부리느냐.
  낮에 왔을 때 두려워하지 않으면
  
[606 / 2071] 쪽
  밤에도 이렇게 오리라.
  

이 비구가 깜짝 놀라서 일어나 앉아 생각하다가 밤중에 다시 잠에 떨어졌다.

그 신이 다시 나타났는데 머리는 열이요, 입에서 불이 나오고, 어금니와 손톱은 칼 같고 눈은 붉은 불꽃 같았다.

 

졸개들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이 게으른 비구를 잡아라. 여기는 게으름을 부릴 곳이 아닌데 어째서 그러느냐?”

 

이때 비구가 크게 놀라며 생각했다.

 

전일하게 법을 생각하여 아라한의 도를 얻었으니,

이것을 일컬어 ‘스스로 정진하여 불방일의 힘을 기른다면 능히 도과를 얻는다’고 하는 것이다.

 

 

또한 이 정진은 스스로의 몸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과보를 아끼는 것이다.

 

몸의 네 가지 위의, 곧 다니고 앉고 멈추고 누움에 있어서 항상 부지런히 정진하며,

차라리 스스로가 몸을 잃을지언정 도업은 그치게 하지 않는다.

 

마치 불을 끄기 위해 법의 물을 던져 넣는 것은 마음이 오직 불을 끄는 데 있을 뿐, 법을 아끼지 않는 것과 같다. 어떤 선인이 제자를 가르치기 위해 이런 게송을 읊었다.

  
  결정된 마음 거뜬하면
  대과보를 얻은 듯하니
  원하는 일 이루어진 뒤에야
  이것이 가장 묘한 줄을 안다.
  

이와 같이 갖가지 인연으로 정진의 이익을 관찰해 능히 정진을 늘리고 더해야 한다.

 

 

 

또한 보살이 고행을 닦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머리․눈․골수․뇌를 달라고 한다면,

능히 그것을 모두 주면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인욕․정진․지혜․방편의 힘이 있어도 그의 요구를 받아들이기가 어렵거늘, 하물며 어리석은 삼악도의 중생이겠는가. 내가 이들을 위하여 부지런히 정진을 닦고 신속히 불도를 이루어 그들을 제도하리라.’

 

 

 

 

 

대지도론 172. 숲속의 작은 비구여. 어찌하여 게으름을 피우느냐?

출처 : 출리심 보리심 공
글쓴이 : - 해탈 -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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