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벽지불의 도 역시 같은 것이라면 어찌하여 성문과 벽지불을 나누는가? |
[답] 도는 비록 한 종류이지만 지혜를 쓰는 일이 다르다. |
부처님이 아직 나타나시기 전이나 불법이 이미 사라졌다면, 이 사람은 전생의 인연 때문에 혼자서 지혜를 내어 남에게 듣지 않고 스스로의 지혜로 도를 얻는다. |
예컨대 어떤 국왕이 동산에서 노니는데, 이른 아침에 숲의 꽃과 열매가 무성하여 매우 사랑스러웠다.
그런데 왕이 밥을 먹고 누운 사이에 왕의 부인과 궁녀들이 모두 가서 꽃을 따느라 숲의 나무를 마구 꺾어 훼손했다. |
왕이 깨어나서 숲이 훼손된 것을 보자 생각했다. |
‘일체의 세상이 무상하게 변하고 무너지는 것도 모두 이와 같으리라.’ |
이렇게 사유하고 나자 무루도(無漏道)의 마음이 생기니, 모든 결사를 끊고 벽지불의 도를 얻었으며, 6신통을 얻어 고요한 숲으로 날아갔다. |
이러한 인연은 전생의 복덕과 원행(願行)의 과보로서 금생에 조그마한 인연을 보고서 벽지불의 도를 이룬 것이다. 이것이 다른 점이다. |
또한 벽지불에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독각(獨覺)이요, 둘째는 인연각(因緣覺)이다. |
인연각이란 앞에서 말한 바와 같거니와 독각이라 함은 그 사람이 금생에 도를 이루되 스스로 깨닫고 남에게 듣지 않으니, 이것을 독각의 벽지불이라 한다. |
독각의 벽지불에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본래 학인으로서 인간 가운데 태어났지만 이때 부처님도 없고 불법도 사라진 뒤로서 이 수다원은 이미 일곱 생(生)을 채우고 여덟 번째 생에서 스스로 성도할 수 없다면, 이러한 사람을 부처라 할 수도 없고 아라한이라고도 할 수 없다. 일컬어 작은 벽지불[小辟支迦佛]이라 하는데, 아라한과 다름이 없기도 하고, 혹은 사리불 등의 큰 아라한만 못하기도 하다. |
둘째는 대벽지불로서 일백 겁 동안 공덕을 짓고 지혜를 길러 32상 가운데 일부를 얻는데, 그것이 혹은 31상, 혹은 30상, 혹은 29상 내지 1상이기도 하다. 아홉 가지 아라한 가운데서 지혜가 날카롭고 수승해져서 모든 깊은 법 가운데서 총상(總相)과 별상(別相)으로 능히 들어가며, 오랫동안 정을 닦고 항상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 이 같은 특징을 일컬어 대벽지불이라 하나니, 이것이 다른 점이다. |
[700 / 2071] 쪽 |
불도를 구하는 이는 처음 발심할 때부터 서원을 세우되 “원컨대 제가 부처가 되어 중생을 구제하고 일체의 불법을 얻으며, 6바라밀을 행하고 마군들과 모든 번뇌를 무찔러 일체지를 얻고 불도를 이루며, 나아가서는 무여열반에 들겠습니다” 한다. |
이러한 본원을 좇아 행하니, 이로부터 있게 되는 지혜로써 총상ㆍ별상과 일체를 모두 다 아나니, 이것을 불도의 지혜라 한다. |
이 세 가지 지혜를 끝까지 잘 알고 그 궁극에 이르나니, 이런 까닭에 ‘지혜의 궁극에 이른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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