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라마 · 보리심 수행

보리심(菩提心)이란 무엇인가?

수선님 2019. 5. 19. 13:00

1. 보리심(菩提心)이란 무엇인가?

 

보리 또는 보리심이란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하지만 정작 그 정확한 핵심 뜻은 정확하게 제대로 모르시는 분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한국불교에서는 대략 깨달음이란 의미로 많이 사용되어지는데,

왜 깨닫는지..거기에 대한 내용이 빠져 있습니다.

보리심이란 시방삼세의 모든 중생들을 단 하나도 빼놓지 않고 고통스런 윤회로부터 모조리 해탈시키겠다는

그 목적아래 일체지(모든 것을 다 아는 지혜)를 얻기 위해 도를 닦는것을 의미합니다.

벌써 마음 자세부터가 틀리지요.

대개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도를 닦고 수행을 합니다.

나 하나 해탈하기 위해서...

하지만, 이 보리심이란 자신을 위해 도를 닦는게 아니라....

오로지 남을 위해서 도를 닦는게 목적입니다.

이게 부처님의 성불 목적입니다.

이게 곧 보리심입니다.

나 하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를 닦는게 아니라,

개미, 파리, 온갖 사람, 귀신, 악마 등등 모조리 다........단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조리 해탈시키겠다는 그 각오 !

하지만, 그렇게 마음을 먹어도 실제로는 그럴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마음만 가지곤 안됩니다.

그래서 그걸 목적으로 그만한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도를 닦는 것 입니다.

이것이 보리심입니다.

보리살타..즉 보살의 마음입니다.

석가 부처님께서도 보살이셨지요.

석가부처님께서도 수없이 많은 윤회기간 동안 아라한을 일부러 달성안하셨을까요?

아닐 겁니다.

맘만 먹었다면 언제라도 아라한을 이루어서 바로 윤회를 끊으셨겠지요.

하지만 보리심을 발하셔서 일체 중생의 성불을 위해 끊임없이 보살의 길을 걸으신거겠지요.

 

 

2. 대승과 소승은 무엇으로 구분되는가?

불교는 크게 대승불교와 소승불교...두가지 종류로 나뉜다고 합니다.

여기서 승이란 탈것을 의미합니다. 수레..

소승이란 그야말로 나 혼자 타고 가는거겠지요.

대승이란 여럿이 함께 타고 피안으로 건너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승, 소승은 지역적이거나 또는 종파에 따라 구분되어지는게 아니라

보리심을 발했냐 안했냐에 따라 구분되어집니다.

남방불교 수행자일지라도 보리심을 발했다면 대승불자요,

북방불교 수행자일지라도 보리심을 발하지 못했다면 소승불자입니다.

소승불자 : 출리심(염리심) + 空

대승불자 : 출리심(염리심) + 空 + 보리심

위에서 보시다시피 소승불자는 자신을 위해 도를 닦지만,

대승불자는 출리심과 공성과 더불어 보리심을 갖추고 도를 닦습니다.

 

 

3. 보리심은 어떻게 해서 생기는가?

어떻게 무조건 남을 위해서만 도를 닦을 수 있을까요?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해 안 다음에야 가능할 겁니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데 어떻게 남을 구제할 생각이들리는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자기 자신의 정체에 대해서 깊게 고찰해 봐야 합니다.

이게 고집멸도 사성제입니다.

부처님께서 그러셨지요.

조용하고 한가한 곳에가서 깊게 사유하라.

고집멸도 사성제 !

- 고성제 : 고통의 성스러운 진리

- 집성제 : 고통의 발생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

- 멸성제 : 고통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

- 도성제 : 고통을 소멸시키는 방법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

왜 성스러운 진리일까요?

고통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에 그렇더군요.

고성제와 집성제를 깊게 사유하면, 왜 고통이 발생하는지 정확하게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의 고통이 어디서 생기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고통이 어디서 생기는지 알면 1차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고통에서 헤메이는 것 입니다.

알면, 그 아는 순간부터 벗어납니다.

아냐 모르냐의 차이지요.

고성제를 특히 깊게 사유해봐야 합니다.

고성제는 오온(색수상행식)과 연결됩니다.

고성제는 총 7가지 고통입니다.

육체적인 고통 4가지 : 생,노,병,사

정신적인 고통 3가지 : 애별리고, 원증회고, 구부득고

애별리고 - 좋아하는 것과 이별하는 고통 (탐심)

원증회고 - 싫어하는 것과 만나는 고통 (진심)

구부득고 - 구하고자 하나 이루지 못하는 고통 (치심)

이 고성제를 깊게 고찰해보면,

정말 이 일곱가지가 정말 고통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됩니다.

이 고성제를 깨달으면 그 때 정말 부처님의 위대함을 알게 됩니다.

정말 놀라게 됩니다.

먼저 이렇게 자기 자신의 고통을 정확하게 알게 되면, 그 때 타인의 고통도 헤아리게 됩니다.

자신의 고통도 모르는데, 남의 고통을 알기란 절대 불가능합니다.

자신의 고통이 왜 생기는지 정확하게 알게 되고 나면, 다른 사람의 고통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때 타인에 대한...남에 대한 연민심과 자비심이 저절로 흘러나오게 됩니다.

또 개미든, 파리든, 사람이든, 그 누구나 다 똑같다는 것도 인식하게 됩니다.

가장 큰 고통은 육도 윤회의 고통입니다.

지금은 부자로 태어났다 할지라도,

내생에는 지옥에 태어날지, 짐승으로 태어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설사 낙원인 천상세계에 태어났다 할지라도

이리저리 윤회할 것은 뻔하고 반드시 지옥에도 태어났다가 또 짐승도 됐다가 또 천국에 태어나고..이걸 반복합니다.

삼계가 다 고통이라고 합니다.

이 육도윤회를 벗어나는 것...

그것만이 행복입니다.

 

 

4. 보리심을 실천하자.

나 자신에 대한 고통을 알게 됨으로 인해, 타인의 고통을 헤아려 줄 수 있게 되고

그 때 자비심이 생깁니다.

아, 저 사람은....저 동물은... 참 안됐구나.. 잘 되었으면 좋겠구나....이런 마음이 자비심입니다.

하지만, 보리심은 여기에 머무르는게 아니고

내가 직접 저 사람...저 동물을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해줘야 되겠다..라는 마음을 먹고 실천하는 것 입니다.

이게 대승이지요.

이러한 원대한 서원을 세우는 사람이 생기면 온 우주가 환희에 떤답니다.

그래서 온 우주가 흔들린다고 합니다.

온 우주 자체..무한한 중생들을 위하는 그런 위대한 존재가 탄생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보리심을 발할 때 그 대상이 몇몇 존재가 아니라,

온 우주 자체의 모든 존재와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존재까지도 그 대상입니다.

 

 

5. 공성(空性) + 보리심

해탈하기 위해, 또는 남을 해탈시키기 위해 수행을 할 때

공성과 보리심을 같이 병행해서 닦는게 가장 좋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대개가 空에만 치우치려는 경향이 없지않아 있습니다.

그래서 도닦을 때 마음만 비우려고 합니다.

마음을 비우는 수행과 그 마음을 잘 쓰는 수행방법을 병행해야 합니다.

마음을 비우는 수행은 삼매..즉 사마타쪽이고

마음을 분석하고 사용하는 수행은 지혜...즉 위빠사나쪽일 겁니다.

보리심도 위빠사나쪽에 해당될 수도 있겠지요.

空이 결론이지만, 그 결론에 도달하려면 반드시 공덕을 쌓아야 하는데

그 공덕을 가장 빨리 쌓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보리심이라고 합니다.

보리심 없이는 空을 완전히 체득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나 한 사람을 위해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그 공덕을 회향하는 것과

시방삼세의 모든 중생들을 위해 공양을 올리고 그 공덕을 시방삼세의 모든 중생에게 회향하는 것..

이것은 어마어마한 차이입니다.

그래서 보리심을 내면,

공덕이 무한으로 순식같에 쌓이게 되며.... 업력, 업장이 급속도로 사라지게 된다고 합니다.

그 모든 일이 다 잘되고, 언제나 천신이 보살펴준다고 합니다.

마음을 비우고 집중하는 수행과, 마음을 분석하는 수행...

그리고 마음을 쓰는... 즉 보리심을 내고 수행을 동시에 병행해야겠습니다.

 

 

6. 진정한 보리심이란?

진정한 보리심이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어야 한다고 합니다.

나에게 잘대해주는 사람만 고통에서 해탈시켜주기 위한게 아니라,

나에게 잘해주던 못해주던 상관없이 모조리 다 고통에서 벗겨주려는 마음자세....

나를 욕하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제외시킨다면, 그것은 보리심이 아니라고 합니다.

아함경에 보면,

설사 내 몸을 천천히 톱으로 썬다고 할지라도, 상대방을 미워하는 마음을 내지 말라는 부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 정도의 마음을 내려면, 엄청나게 노력해야겠지요.

부처님께서 이런 행을 행하셨지요.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를 담은 내용을 보면 이런 내용들이 수없이 많이 나옵니다.

전생에 어떤 마을 사람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어떤 걸로 병을 고칠수 있을까를 알아보시고 물고기가 약임을 아시고서는

일부러 물고기로 태어나서 자신을 희생하셨던 부처님.....

몸을 공양한 내용들이 많이 나옵니다.

 

 

7. 모두가 내 어머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엔 윤회가 있습니다.

한도 끝도 없이 펼쳐진 윤회.....

시작이 어디인지 모른다고 합니다.

왜 시작이 없을까를 분석해보면 그 본질이 텅텅 비어 있기 때문일 겁니다.

空이지요.

그래서 시작도 끝도 없겠지요.

그러니 당연히 윤회...한도 끝도 없이 수도 없이...천억번 이상도 계속 윤회를 반복 또 반복합니다.

그래서 경에서 부처님은 이런 말씀도 하십니다.

비구들아, 너희들이 소로 태어나서 목이 잘려서 흘린 피가

이 지구상의 온 바닷물의 양보다 훨씬 더 많느니라.

또 사람으로 태어나서 도둑이 되어 도둑질을 하다가 잡혀서 목이 잘려서 흘린 피가

온 대양의 바닷물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더 많느니라.

우리는 개, 돼지로도 분명히 수없이 많이 윤회했습니다.

또는 사람으로도 수없이 많이 윤회했습니다.

이 때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가 있습니다.

이번생에도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가 있습니다.

전생이 있다면, 그때도 분명히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가 있습니다.

또 그 전전생이 있다면 그때도 그때도 분명히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가 있습니다.

이렇게 따져보면, 내 어머니의 숫자는 한도 끝도 없이 많고,

내 어머니가 아닌 존재는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알아본바로는 내 어머니가 아닌 존재는 아직까지 만나지 못했다....

그 누구던지 전부 다 한번씩 또는 여러번씩 어머니였었다는 말씀입니다.

윤회는 이렇게 끝이 없이 이어져 왔으니, 당연히 어머니의 숫자도 한도 끝도 없는게 당연합니다.

모두 가 다 전생의 어머니였다라는 뜻 입니다.

지금 제 앞에 날라댕기는 날파리도 역시 한때는 전생에 제 어머니였고..

또 길가를 지나가는 사람도 역시 마찬가지로 전생에 제 어머니였다라는 뜻 입니다.

내가 아주 오래전에 전생에 개로 태어났을 시, 분명히 나를 낳아준 어미 개가 있습니다.

그 개도 역시 나의 어머니입니다.

그래서 동물이건 사람이건..............그 누구던지 다 잘 대해주어야 합니다.

개든, 사람이든, 날파리든...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다 내 어머니입니다.

내 어머니이기 때문에 고통에서 건져드려야 합니다.

내 어머니이기 때문에 그 어머니가 나를 못살게 굴어도 역시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보리심입니다.

 

 

 

 

 

 

 

 

 

 

무인아제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moonceo/504 에서 복사한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