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

대지도론 284. ★ 보살의 부정관/시체관

수선님 2019. 8. 11. 12:42

대지도론 284. ★ 보살의 부정관/시체관

 

 

 

 

[문] 이 아홉 가지 모양은 어떠한 성품[性]이고 반연할 대상[所綠]은 무엇이며 어느 곳에 속하는가?

[답] 취하는 모양의 성품과 반연은 욕계(欲界)에 있는 몸의 색상(色相)인 음(陰)에 속하며,

또한 신념처(身念處)의 일부분이고 혹 욕계에 속하기도 하고 혹 초선(初禪)․2선․4선에 속하기도 한다.

 

아직 탐욕을 여의지 못하고 마음이 산란한 사람은 욕계계(欲界繫)42)를 얻고,

욕망을 여읜 사람은 마음에 색계계(色界繫)43)를 얻는다.

 

 

창상(脹相) 등 여덟 가지 모양은 욕계와 초선과 2선 중에 속하고,

깨끗한 골상[淨骨想]은 욕계와 초선․2선․4선 중에 속하며,

3선(禪) 가운데에는 쾌락이 많기 때문에 이런 상(相)이 없다.

이 아홉 가지 모양은 바로 신념처(身念處)의 문을 열고 신념처는 세 가지 염처[三念處]의 문을 열며,

이 네 가지의 염처는 37품(品)의 문을 열고 37품은 열반의 성문(城門)을 여는데,

열반에 들면 온갖 근심과 괴로움의 모든 고통을 여의고 5음에 대한 인연이 생김을 없애기 때문에

열반의 항상함[常]과 즐거움[樂]을 받는다.

 

[문] 성문(聲聞)의 사람은 이처럼 관하면서 마음에 싫증을 내므로 빨리 열반에 들려고 하나 보살은 온갖 중생을 가엾이 여기어 온갖 불법을 쌓아 모든 중생을 제도하면서 빨리 열반에 들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이 아홉 가지 모양을 관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야 2승의 깨달음[證]에 떨어지지 않는가?

 

41) 범어로는 vajropamasamādhi. 금강(vajra)과도 같이 견고해 무너지지 않는 삼매라는 뜻이다.
42) 범어로는 kāmadhātvavacara.
43) 범어로는 rūpadhātvavacara.

 

 

 

[답] 보살은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낸다.

중생은 3독(毒)의 인연 때문에 이 세상과 뒷세상에 몸을 받아 나면서 고통을 받는다는 것을 안다.

이 3독은 끝내 스스로 소멸되지 않고 또한 그 밖의 도리로써 소멸시키지 못한다.

다만 집착한 안팎의 몸의 모양을 관한 연후에만 제거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보살은 이 음욕의 독을 없애기 위하여 이 아홉 가지 모양을 관하는 것이다.

마치 사람이 병든 이를 가엾이 여기어 약을 조제하여 그를 치료하는 것처럼 보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물질[色]에 집착하는 중생들을 위하여 이 청어상(靑瘀相) 등을 말하여 그 집착하는 곳에 따라 모든 모양을 분별하나니,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이것이 보살이 행하는 9상관(相觀)이다.

 

 

 

또 보살은 위대한 자비심으로 이 아홉 가지 모양을 행하면서 생각하기를 “나는 아직 온갖 불법을 두루 갖추지 못하였고 열반에도 들지 못했다. 이것은 하나의 법의 문이 되므로 나는 이 하나의 문에 머물지 않아야 하며, 나는 온갖 법의 문을 배워야 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보살은 아홉 가지 모양을 행하여도 방해될 것이

없다.

보살은 이 아홉 가지 모양을 행하다가도 때로는 싫증나는 마음이 일어나면서 “이와 같이 청정하지

못한 몸은 증오해야 하고 근심해야 한다. 어서 열반을 취하고 싶구나”라고 하기도 한다.

 

그때 보살은 생각하기를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모든 법의 모양은 공하며 공한 가운데서는 무상(無常)함도 없다’고 하셨거늘

하물며 청정하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

 

 

다만 청정하다는 뒤바뀐 생각을 깨뜨리기 위하여 이 청정하지 않은 것을 익힐 뿐이다.

이 청정하지 않은 것은 모두 인연(因緣)의 화합에서 생긴 것이라

자성(自性)도 없고 모두가 공한 모양으로 돌아가고 만다.

나는 이제 이 인연의 화합에서 생기고 자성도 없는 청정하지 않은 법을 취하면서

빨리 열반에 들려고 하지 않아야 한다”

고 할 것이다.

 

 

 

 

경 가운데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만일 물질[色] 안에 맛[味]의 모양이 없다면 중생은 맛에 집착하지 않아야겠지만 물질 안에는 맛이 있기 때문에 중생은 집착을 일으킨다. 만일 물질에 허물[過罪]이 없다면 중생은 역시 물질을 싫어하는 이가 없겠지만 물질에는 실로 허물이 있기 때문에 물질을 관하여 곧 싫어하는 것이다.

 

만일 물질 안에 벗어나는[出] 모양이 없다면 중생도 물질에서 벗어날 수 없겠지만 물질에는 벗어나는 모양이 있기 때문에 중생은 물질에서 해탈을 얻으니, 맛이란 청정한 모양의 인연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보살은 청정하지 않은 것 가운데서 죽어서 일찍 열반에 취하지 않는 것이다."

[827 / 2071] 쪽

아홉 가지 모양[九相]의 뜻을 분별하여 마친다.

 

 

 

 

 

출처 - https://blog.naver.com/jati108/70172332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