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ERENNIAL PHILOSOPHY
들어가며
영원의 철학’은 세계의 본질인 ‘신성한 실재divine Reality’가 있음을 인정하는 형이상학이자, 인간의 영혼에서 ‘신성한 실재와 유사하거나 동일한 무언가’를 발견하는 심리학이며, ‘모든 존재의 내재적이면서 초월적인 바탕Ground에 대한 앎’을 인간의 최종 목표로 두는 윤리학으로 , 아득한 옛날부터 전해져온 보편적인 개념이다. 모든 원시민족의 전통 구전설화에서 영원의 철학의 기초를 발견할 수 있으며, 모든 고등종교에서 완전하게 발달된 형태를 찾을 수 있다. 14
'앎knowledge'이란 존재의 다양한 기능이다.
아는 자에게 변화가 생기면 앎의 질과 그 양에 있어서도 그에 상응하는
변화가 일어난다.
아는 자의 생리적 또는 지적인 변화가 그의 앎애 영향을 주는 유일한 요소는 아니다. 우리의 앎은 도덕적 존재로서의 우리가 스스로를 완성시키기
위해 무엇을 선택하는가 하는 것에도 달려있다.
윌리엄 제임스의 표현을 빌리면, "연습Practice이 이론적 지평을 변화시킬 것이다. 이것은 두 가지 방식, 즉 새로운 세계로 이끌고 새로운 힘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일어난다. 우리가 현재 모습으로 남는다면 앎에 결코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성취할 수 있는 차원 높은 힘과 삶의
결과로 앎에 도달 할 수 있을 것이다. 15
선집anthology임에도 불구하고 전문적인 문필가의 글은 거의 싣지 않았고 철학을 언급하면서도 직업적인 철학자의 글은 거의 다루지 않았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영원의 철학은 주로 사물․생명․마음을 구성된 다원적 세계의 근본이 되는, 일원적인 신성한 실재와 연관되어 있다. 그런데 이 유일한 실재는 특별한 조건을 만족시키는 선택된 사람, 스스로를 사랑스럽게 만들고 가슴이 순수하면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 이외에는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는 특징이 있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다. 우리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수용하기 어렵더라도 이것은 받아들여야 할 사실이다. 물이 수소와 산소와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은 일상의 경험을 통해서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물에 극단적인 처리를 가하면 그 구성 요소들의 성질이 드러난다. 마찬가지로 일상의 경험을 통해서는 감각에 매여 있는 보통 사람의 마음이 다양한 세계의 근본을 이루는 실재와 유사하거나 이와 동일한 무언가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추정하기 어렵다. 16
전문적인 철학자와 문필가들이 ‘직접적인 영적 앎’이라는 필요조건을 충족시키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거의 없다. 시인이나 형이상학자들이 영원의 철학이라는 주제를 다룰 때는 간접적으로 전해들은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어느 시대에서든 직접적인 영적 앎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얼마간 존재했으며, 실제로 그런 앎을 얻을 수 있었다. 이들 중 몇몇은 그런 식으로 포착할 수 있었던 ‘실재’에 대한 설명을 기록으로 남겼고, 하나의 포괄적인 사상 체계 속에서 이런 경험적 사실들을 그들의 다른 경험들과 연관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이렇게 영원의 철학을 직접 체험하고 주장한 사람들에게는 보통 ‘성인’ ‘예언자’ ‘현자’ 혹은 ‘깨달은 자’라는 호칭이 붙었다. 17
인도에서는 경전을 두 가지 종류로 니눈다. 슈루티Shruti는 영감을 받아 작성된 것인데 그 자체로 권위가 있다. 왜냐하면 궁극적인 실재를 직접 통찰하여 쓰였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인 스므리티Smriti는 슈루티에 근거하고 있으며,거기에서 권위가 비롯된다. 상카라의 표현을 빌리면, “슈루티는
직접적인 인식에 의존한다. 스므리티는 부분적으로 귀납법과 유사한데,
귀납법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권위를 다른 것의 권위로부터 끌어오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신성시되는 저술들은 익숙하기 때문에 불행히도 그 가치가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 성스러운 말씀의 의미에 대해 일종의 경건한 무감각, 정신적 마비, 내적인 귀머거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18
01 그대가 그것이다
That Art Thou
영원의 철학은 세 가지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 실천과 도덕성이라는
밑바닥에서 시작하거나, 형이상학적 진리를 고려하며 꼭대기에서 시작하거나, 마음과 물질, 행동과 생각이 인간의 심리학에서 만나는 장소에 초점을 두는 중간에서 연구를 시작하는 것이다.
낮은 문은 고타마 붓다처럼 철저하게 현실적인 스승들이 선호하는 방법으로, 이들은 사변을 이용하지 않고 인간의 가슴에서 탐욕․분노․미혹과 같은 끔찍한 불을 끄는 데 주로 관심이 있다. 높은 문을 통과하는 사람들은 생각하고 분석하는 것이 천직인 타고난 철학자와 신학자들이다. 중간 문은 이른바 ‘영적 종교’의 옹호자들에게 입구를 제공한다. 인도의 헌신적인 명상가들, 이슬람의 수피들, 중세 후기의 가톨릭 신비주의자들, 그리고 프로테스탄트 전통에서는 뎅크 프랑크, 카스텔리오, 에버라드, 존 스미스 및 초기
퀘이커교도들과 월리엄 로 같은 이들이다. 21
신께서는 모든 곳에 계시지만, 그대 영혼의 가장 깊고 가장 중심적인 곳에만 존재하신다. 타고난 감각으로는 신을 포착하거나 그대를 신과 하나 되도록 하지 못한다. 이해․의지․기억이라는 내적 능력은 신을 향해 손을 뻗지만, 그대 안에서 신의 거주처가 될 수는 없다. 모든 인간의 최종 목표는 자신이 실제 누구인가를 발견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 모든 능력들이 나오는 그대의 뿌리, 심연이 존재한다. 마치 중심에서 뻗어나온 선들처럼, 나무기둥에서 뻗어나오는 가지처럼, 이 심연을 영혼의 중심, 근원 또는 밑바탕이라고 한다. 이 심연이 그대 영혼의 단일성이자 내가 거의 무한이라고 말했던 영원성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너무 무한해서 신의 무한성만이 그것을 충족시키거나 거기에 휴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윌리엄 로(William Law) 24
인간 마음의 거의 무한한 잠재력이 그토록 오랫동안 실현되지 못했던 두
가지 충분한 이유는, 적절한 용어 및 적합한 준거 틀frame of reference의 부족과 필요한 생각의 도수를 고안해내고자 하는 강력하고 지속적인 욕망의 부재이다. 이와 비슷한 수준으로 똑같이 납득할 만한 다른 이유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유익한 생각의 대부분은 형편없는 체격과 비실용적인 기질을 지닌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또 분석적이든 통합적이든 어느 곳에서나 순수한 사고의 가치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문명화된 모든 사회는 사상가들에게 일상의 부담과 사회생활의 스트레스로부터 보호조치를 취해주었으며, 현재도 여전히 그러하다. 그런 희귀한 사람들, 즉 종교적․철학적․예술적․과학적 사색가들을 보호하기 위해 후원자들이 주로 이용했던 수단들은 은둔처․사원․대학․전문학교․연구실험실․동냥그릇․기부금․후원금․세금납세자의 금액에서
지불되는 보조금들이다.
원시 사회는 상황이 어려웠으며, 잉여의 부가 존재하지 않았다. 타고난 사색가는 보호막 없이 사회적 우위세력과 생존을 위한 투쟁에 직면해야 했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 일찍 사망하거나 살아 남기 위해서만 필사적으로 바쁜 시간을 보낸 나머지 자신의 주의를 다른 곳에 쏟을 수가 없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강인하고 외향적인 활동가의 철학이 지배적적인 철학이 된다. 49
이 모든 것은 영원의 철학에 어떤 빛(실로 희미하면서도 추론적인 것에
불과한)을 던진다. 인도에서는 경전을 역사의 어떤 시점에서 일어난 계시가 아니라 영원한 진리, 즉 인간이 탄생한 이래로 존재해왔던 복음godspel으로 간주한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비슷한 견해를 피력했는데, 그는 종교의
근본 진리를 영원하면서도 파괴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 선사시대 인간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약간의 타제석기와 몇몇 그림, 조각들 뿐이지만)과 더 문서화가 잘된 다른 지식분야로부터 제대로 추론할 수 있는 것에 비춰볼 때, 이런 전통적인 교리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개인적으로는 이것들이 사실일 수 있다고 본다. 기록이 남아 있는 역사적 시기 동안, 분석적 사유와 통합적 사유의 양 영역에 타고난 꽤 많은 숫자의 사색가들이 자주 등장하였다. 그러므로 역사 기록이 존재하기 전에도 그런 사람들이
출현했을 것이라고 가정할 근거는 충분하다. 이 중 다수는 젊은 나이에 사망했으므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없었겠지만, 소수는 틀림없이 살아남았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현대의 수많은 원시종족들 사이에서 두 가지 사유양식이 발견된다는 사실은 아주 의미심장한 일이다. 비철학적 다수를 위한
대중적exoteric 양식과 소수의 입문자를 위한 비전적esoteric 양식(대개
일신교이며 힘뿐만 아닐 선함과 지혜도 갖춘 신을 믿음)이다. ~ 그런 만약 타고난 사색가에게 적합한 비전적 일신론 같은 것이 현대 미개인 사회(활동가들에게 적합한 일종의 다신교 철학을 구성원 대다수가 받아들인)에서도 가능하다면, 선사시대에도 유사한 비전적 교리가 통용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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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철학의 본질적 개념은 매우 단순한 용어로 표현될 수 있으며, 그런 개념들이 가리키는 경험은 어떤 용어와도 별개로 또 즉시 체험될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되어야 한다. ~ 본 트러헌, 워즈워스가 말했듯이 현대의 어린이는 사물의 단일한 근본바탕에 대한 직접적 자각 없이 성장한다. 왜냐하면 분석적 사고습관은 ‘심령적psychic' 혹은 영적 수준에서의 통합적 사유가 갖고 있는 편견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심령적 편견은 진정한 영성의 여정에서 주된 방해물이 될 수 있고 또 종종 방해로 작용한다. 미개한 사회는 현재(추정컨대 먼 과거에도) 심령적 사고에 상당히 몰두해있으며 이에 대한 재능도 널리 퍼져있다. 그러나 소수는 심령 수준에서 진정으로 영적인 경험으로 더 나아갔다. 현대 산업사회에서도 몇몇 사람들은 널리 퍼져 있는 물질의 몰두에서 벗어나 일반적인 분석적 사고습관을 통과해 사물의 영적인 근본바탕을 직접 경험하는 것처럼 말이다. 51-52
물질세계에 관한 완전한 앎은 오랜 시간이 경과하여 기술과 정보가 상당히 축적되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물질세계의 바탕인 ‘영원히 완전한 의식’에 대한 직접적인 자각은, 어린 시절부터 나이가 들기까지 개인 발달은 거의 어느 단계에서나 그리고 인류 역사의 어느 시기에서나 때때로 가능했던 일이다. 53
02 근본바탕의 성질
The Nature of Ground
초월적이며 전능한 인격신을 애정 어린 아버지로 여긴다면 상황이 훨씬 낫다. 그런 신을 진심으로 숭배하면 행위뿐만 아니라 인격이 변하며, 의식에도 어떤 변화를 일으킨다. 그러나 ‘깨달음’, ‘해방’, ‘구원’인 의식의 완전한 변용은 영원의 철학이 단언하듯 신을 초월적이면서도 내재적이고, 인격적이면서도 초(超)인격적이라고 여길 때, 이런 생각에 맞추어 종교적 수행할 때에만 일어난다. 57
일시적으로 머무는 이 삶에서 영혼에게 부여된 가장 위대한 은혜 한 가지는 신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알고 깊게 느끼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영혼들은 천상에 있는 성자와 비슷한데, 그곳에서
신을 완벽하게 알고 있는 성자들은 신께서 한없이 불가해하다는 사실을
가장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십자가의 성 요한 59
마지막으로 ‘비범한’ 드러남에 해당하는, 아주 이상하지만 도외시하기 힘들 정도로 상당한 증거들이 그 존재를 입증하고 있는 현상인 신앙 요법faitj healing과 공중부양을 살펴보자. 루르드에서나 최면술사의 상담실에서 어떻게 믿음이 질병을 치료하는지, 또는 코페르티노의 성 요셉이 어떻게 중력법칙을 무시할 수 있었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우리는 라인 교수가 PK 효과라고 부른 방식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의 정신적 상태가 주사위가 떨어지는 것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은 이제 의심의 가능성을 넘어서 확실한 것 같다. 63
시간에 속박된 다체로운 마음이 뿌리내리고 있는 근원은 단순하면서도
영원한 자각awareness이다. 우리 자신의 가슴을 순수하게 하고 영혼을
가난하게 함으로써 이런 자각을 발견하고 그것과 동일시할 수 있다. 우리는 영 안에서 신성한 바탕과 결합하는 앎을 가질 수 있으며 또한 그런 앎이 될 수 있다. 67
신성한 신앙의 빛은 너무나 순수해서 특정한 빛은 거기에 비해서 불순하기만 하다. 성인들, 축복의 마리아라는 관념, 인간의 모습을 한 예수 그리스도의 목격조차도 순수한 신을 보는 데는 걸림돌이 된다. J.J.올리에 70
그대는 신이 아니고, 근본 영이 아니며, 사람이 아니고, 이미지가 아닌 신을 사랑해야 한다. 그분은 둘인 것 two-ness과는 다른, 완전하고 순수한 절대적 일자One로서, 그 분 안에서 우리는 영원히 무nothingness에서 무로 가라앉아야 한다. 에크하르트 71
모든 존재의 신성한 근본바탕은 하나의 연속체일 뿐 아니라 시간에서 벗어나 있으며, 그 정도 뿐아니라 그 종류에 있어서도 전통적인 언어와 수학 언어에 적합한 세상과는 다르다. 그러므로 영원의 철학을 기술하는 모든 설명에는 역설, 언어적 과장, 때로는 신성모독처럼 보이는 표현이 빈번하게 나타난다. 75
신은 어떤 무엇이 아니다. 달리 말해서 근본 바탕은 거기에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낼 수 있을 뿐 어떤 특징을 가진 것으로 정의할 수는 없다.
근본바탕에 대한 직접적인 앎은 합일union을 통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으며, 합일은 오직 ‘그것’으로부터 ‘그대’를 분리하고 있는 장벽인 이기적인 에고를 소멸함으로써만 달성될 수 있다.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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