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흰 구름이 머무는 곳'
한 스님이 물었다.
“흰 구름이 떨어지지 않을 때는 어떻습니까?”
“나는 천문(天文)은 모른다.”
“그래도 주객(賓主)이야 없겠습니까?”
“나는 주인이고 그대는 손님인데, 흰 구름은 어디 있느냐?”
옛 시조를 보면, '흰 구름(白雲)이 푸른 산(靑山)에 걸려 있으니 보기가 좋구나' 라는 싯구가 나오는데 선(禪)을 노래한 게송에도 백운, 청산은 자주 등장합니다. 어느 선사인지 모르지만 백운을 노래한 것을 이 스님이 듣고, '흰 구름이 떨어지지 않을(白雲不落) 때는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는데, 산 위에 뭉게 구름이 두둥실 떠서 어디로 가지도 않고 그렇다고 머물지도 않는 그런 상태를 그린 것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 흰 구름이 이곳 저곳 한가하게 거닐고 있는 장면을 한번 그려 보십시오. 솜털 같은 흰 구름이 마음속에 계속 머물지도 가지도 않을 때, 그러한 때는 어떤 경지의 사람입니까? 하고 묻는 것입니다. 조주의 '나는 천문은 모른다' 란 말은 자기는 기상 분야에 전문가가 아니라는 말이죠.
'손님과 주인(賓主)'이란, 임제의 사빈주(四賓主)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저기 앞에서 설명을 드렸습니다. 모르시면 다시 찾아보십시오. 도(道)를 모르면 100살을 먹어도 손님, 3살 애라도 도(道)에 통달하면 주인입니다. '그래도 손님과 주인의 도리야 없겠습니까?' 자기가 마치 주인이 된 듯이 말하니 우스운 장면이네요.
조주는, “나는 주인이고 너는 손님이다. 그런데 네가 말한 흰 구름은 어디 있느냐?"고 되묻습니다. 이 흰 구름은 실제로 하늘에 드리운 자연의 구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나 가벼운 구름 같은 것이 항상 우리 마음에 있음을 알아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사실 또 무슨 구름이라고 있겠습니까? 진공묘유입니다.
125. '대들보의 재목감'
한 스님이 물었다.
“매우 훌륭한 사람이 형편없이 보일 때는 어떻습니까?”
“대들보로 쓸 재목(棟梁材)을 망가뜨렸구나!”
훌륭한 사람, 도인(道人)이 매우 어리석게 보일 때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조주는 동량의 재목감을 망가뜨렸다고 했습니다. 어떤 선사는 '깨진 질그릇' '눈금 없는 저울대' 라고도 하였습니다. 대들보가 쓰러질 때까지 넘어져야 합니다. 깨달음이란 그런 경지로 서서히, 깊숙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
126. '부처 불(佛)자 듣기 싫어'
조주선사가 시중(示衆)하여 설하였다.
“나는 부처 불(佛)자 듣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한 스님이 물었다.
“큰스님은 사람들을 위하십니까?
“사람들을 위하지.”
"어떻게 사람들을 위하십니까?”
“깊은 뜻(玄旨)을 알지 못하면 생각만 고요히 해도 헛수고다.”
“깊은 것(玄)은 그렇다 치고, 무엇이 뜻(旨)입니까?”
“나는 근본(本)을 붙잡지 않는다.”
“그것은 깊은 것이고, 무엇이 뜻입니까?”
“그대에게 대답함이 뜻(旨)이다.”
조주는 부처 불(佛) 자(字)를 싫어한다고 말합니다. 부처란 깨달은 자이나, 깨달았다는 생각을 초월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부처니, 중생이니, 마음이니, 한 물건이니, 이 모두를 뛰어넘어 아무 개념(想), 모습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도(道)란 그 어떤 분별도 하지 않는다는 그 뜻을 확실하게 정의하는 법어입니다.
부처 한 글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니, 공부하는 자들을 위하는 것입니까? 파괴하는 것입니까? 그래도 이것이 수행자들을 도우는 일입니다. 직지인심으로 송곳으로 찌르고 망치로 내리치는 것이죠. "어떻게 사람들을 위해 줍니까?” 별로 아무 것도 도와주는 것이 없는 것 같아 이 수행자는 심통을 부립니다. '그런 말은 제게 아무 도움도 안되니 진실로 진실로 깨우치는 방편을 가르쳐 주십시오.'
조주의 “깊은 뜻(玄旨)을 알지 못하고 생각만 고요히 하면 헛수고다.” 현지(玄旨), 깨달음의 진리, 바로 우리 스스로의 성품(自性)이죠. 견성(見性)하지 못하니 마음속으로 모든 생각만 없애려고 용을 쓴다, 애를 먹는다는 말입니다. 무심(無心)이 되어야 하지만 무심은 아무 생각 없음이 아닙니다. 생각에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현묘함(玄)은 그렇다 치고, 무엇이 뜻(旨)입니까?” 선종의 뜻, 즉 종지(宗旨)는 무엇입니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 마음입니다. 이 마음만 볼 수 있으면 끝난다는 말입니다.
“나는 근본(本)을 붙잡지 않는다.” 나는 우리의 본성(本性)이라고 하여 이 마음을 붙잡지도 않는다. 텅 빈 마음을 어떻게 볼 수도, 붙잡을 수도 있겠습니까? 그래도 그냥 콱 이 마음을 붙잡아야 합니다. 소설이나 에세이 같은 글에서도 이렇게 표현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현묘함이고 무엇이 뜻(旨)입니까?” “그대에게 대답하는 것이 뜻(旨)이다.” 이 스님은 말 마디만 계속 붙잡고 늘어지고 있으니 한숨만 나올 수밖에, 그래도 가르쳐야 합니다.
‘이렇게 대답하고 있는 노승의 목소리가 바로 그 뜻이다. 말하는 그것을 잡아채라. 그대가 말을 하면, 말하는 바로 그 친구이다. 그 주인공을 알아야 한다’
127. '각자에게 선과 도가 있다'
조주선사가 시중하여 말했다.
“모든 사람에게 선(禪)이 있고 도(道)가 있다. 갑자기 어떤 사람이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도냐고 여러분에게 묻는다면 무어라고 대답하겠는가?”
그러자 한 스님이 물었다.
“이미 각자에게 선(禪)과 도(道)가 있는데, 예로부터 지금까지의 말씀은 무엇을 위함입니까?”
“그대의 떠도는 혼(遊魂)을 위함이다.”
“어떻게 사람들을 위해야 합니까?”
이에 조주선사는 뒤로 물러나 아무 말씀이 없었다.
마음 공부하는 모든 수행인, 각 사람에게 선(禪)도, 도(道)도 모두 갖추어져 있다. 우리 마음, 자성의 반야지혜는 대원경지(大圓鏡智)라 하여 원만하게, 거울처럼 비추는 일체의 지혜를 구족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혜, 지식, 선, 도, 모두 갖추고 있어 귀신처럼 잘 알아맞힌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조주는 '갑자기 어떤 사람이 선, 도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고 물었습니다. 뭐! 모두가 각자 가진 것, 그것 아니겠습니까? 보다 넓혀 보아서 사방 둘러보아 선, 도 아닌 것이 어디 있습니까? 사실은 이게 정답입니다. 이걸 체득해야 합니다.
한 수행자가 '큰 스님 말씀대로 모든 사람이 선(禪), 도(道)를 갖췄다면, 역대 조사, 선사들이 설법을 하고 이심전심으로 도(道)를 전하고 한 것은 도대체 무슨 이야기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것은 “그대의 떠도는 혼(遊魂)을 위해서이다.” 그대에게 선, 도가 있는데도 인식하지 못하니 몸뚱이 없이 떠돌아다니는 영혼이나 마찬가지 아니냐? 너 같은 놈을 위해서 가르침을 펼칠 수밖에.
“모르겠습니다. 제발 큰 스님의 진실한 가르침을 보여 주십시오.” 라고 하자, 조주는 몸을 뒤로 빼고 침묵으로 도(道)를 보여 주었습니다. 알든지 모르든지.
128. '생각하는 그 사람'
조주선사가 시중(示衆)하여 말했다.
“한가로이 지내지 말고 부처(佛)를 생각하고, 법(法)을 생각해라.”
그러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학인(學人) 자신의 생각입니까?”
“생각하는 자는 누구냐?”
“도반이 없습니다(無伴).”
조주선사는 “이 당나귀야!” 하고 꾸짖었다.
위에서 조주는 '나는 부처 불(佛) 한 글자를 싫어한다'고 해 놓고는, 여기서는 변덕스럽게 '부처를 생각하고 법도 생각해라'고 가르칩니다. 참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지만 그 어느 관념에도 구애받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한 수행자가, “제 자신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라고 묻습니다. 제가 생각을 하긴 하는데, 누가 생각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말입니다. 참으로 정신 나간 소리 하는 것 아닙니까?
“지금 생각하는 그 자는 누구냐?" 그 자가 바로 진실한 그대란 말이죠. 말하고, 생각하고, 보고, 듣는 그 자이다. 그것을 바로 알아채겠는가? 번뇌 망념이 곧 부처 마음이고, 네 청정법신이다. 그것만 체득하면 된다. 이 말이 바로 직지인심(直指人心)입니다.
“(저에겐) 도반이 없습니다(無伴).” 조주선사가 직지인심으로 콕 찔러 주었더니 기껏 하는 말이 '저에겐 도(道)를 벗삼을 친구가 없습니다' 라고 하니, 이 당나귀 보다 못한 놈! 쯧쯧! 제 고향 친구를 저버리는구나!
[출처] 조주록 강해 28(124-128)|작성자 byuns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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