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 '묻고 싶으면 묻는 자를 알아라'
조주선사가 시중(示衆)하여 말했다.
“그대가 물어올 것도 아니요, 내가 대답할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하기를,
“그대는 차수(叉手)하거나 합장하지 말라. 나도 선상(禪床)에서 불자(拂子)로 대답하지 않겠다.“
조주선사가 대중에게 가르치기를, “그대가 물어올 것도 아니요, 내가 대답할 것도 없다.”고 했는데, 이 말은 그 반대로, 반어(反語)적으로 이해해야 되겠습니다. 선사가 법어(法語)를 내리지 않으면 또 어떻게 깨달을 길을 찾겠습니까? 물론 조주의 말은 물고기를 낚기 위한 미끼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만 말입니다.
뒷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대는 차수(叉手)하거나 합장하지 말라." 여기서 차수(叉手)는 공손하게 두 손을 깍지 끼는 것이고, 합장(合掌)은 두 손바닥을 합하여 예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큰 스님 앞에 가르침을 받기 위해 경건한 자세를 갖추는 것이죠.
그러면 조주는 '나도 선상에서 불자로 대답하지 않겠다.“는 말은, 사실 '그대들이 제대로 묻고 배우려는 자세를 갖추면, 나는 먼지를 터는 총채 같은 불자(拂子)로 대답하지는 않겠다.' 이 뜻으로 한 말입니다.
구지선사는 단지 손가락 하나를 들었습니다. 왜 불자(拂子)와 손가락 하나를 들어 가르침을 펼쳤을까요? 석가가 영산회상에서 꽃을 든 소식입니다. 이 고향의 소식을 재빨리 낚아채야 큰 고래 한 마리를 건져 올립니다. 동해 바다로 나가지 않아도 고래를 낚을 수 있습니다. 오! 월척이네!
그렇지만 조주선사는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행동만으로 도(道)를 보여주지는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단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그대들도 차수하거나 합장을 하는 것으로 질문이라고 가름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물어보려면 당당히 말로써 물어보라 이 말이죠.
애매하게 남의 흉내나 내어 행동이나 제스처로 도를 물으면 나도 애매하게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음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 시대의 병이란 말이죠. 괜히 몽둥이를 휘두르거나 고함을 지르는 것을 삼가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141. '생각과 기억이 미칠 수 없는 곳'
한 스님이 물었다.
“생각과 기억으로는 미칠 수 없는 곳은 어디입니까?”
“이쪽으로 오너라.”
“이쪽으로 오는 것은 미칠 수 있는 곳입니다. 무엇이 생각으로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까?”
조주선사는 손을 들면서 말했다.
“그대는 이것을 뭐라고 부르느냐?”
“손이라고 부릅니다만 큰스님께서는 뭐라고 부르십니까?”
“나는 백 가지 이름으로 말할 수 있다.”
“스님의 백 가지 이름에는 미칠 수 없겠으나 우선 뭐라고 부릅니까?”
“그게 바로 그대가 생각과 기억으로 미치지 못하는 곳이다.”
그 스님이 절을 하자 조주선사가 말했다.
“그대에게 생각과 기억이 미치는 곳을 가르쳐 주겠다.”
“어떤 곳입니까?”
“석가의 가르침과 조사의 가르침이 그대의 스승이다.”
“조사와 부처라면 옛 분들이 다 말씀해 놓았는데 무엇이 생각과 기억으로도 미칠 수 없는 곳입니까?”
조주선사가 다시 손가락을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뭐라고 부르겠느냐?”
그 스님이 한참 잠자코 있자 선사가 말했다.
“선뜻 말하지 못하고 다시 무엇을 의심하느냐?”
여기서는 조주선사도 손가락 하나를 드는군요. 그러나 먼저 '이쪽으로 오너라'고 법을 알려주고 난 뒤의 행동입니다. 이 수행자는 생각이나 기억이 미칠 수 없는 곳, 곧 모든 사량 분별(思量分別)을 떠난 곳을 찾고 있습니다. 그 곳은 어디에 있을까요?
조주는 손을 들어 보이면서 그 곳을 만나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 수행자는 손을 손으로 밖에 보지 못하니 그 곳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조주는 모든 사람이 손을 손이라고 부른다면 자기도 그렇게 불러야 하겠지만 그 곳이 바로 모든 생각이나 기억, 분별을 떠난 곳이라고 바른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바로 여기서 깨달아야 합니다. 조주가 손을 든 그 곳에 우리 마음의 고향 소식이 있습니다. 즉시 알아채십시오.
조주가 활을 그렇게 세게 당겼는데도 그 수행자의 가슴에서 화살이 튕겨져 나오자, 다시 활시위를 당깁니다. '석가와 모든 조사의 가르침이 그대의 스승이다.' 즉, 석가모니와 조사들의 말로 한 가르침은 그대가 마음으로 깊이 살펴보면 손가락임을 알아챌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곤 한 손가락을 들어 그 스님을 조준하면서, '그러나 내가 이렇게 손가락을 든 곳이 사량 분별을 떠난 곳이니 이 곳이 어디인가?' 빨리 말해라! 빨리!' 조주는 다시 한 번 세차게 당깁니다. 여기서 전광석화처럼 번뜩 눈이 떠져야 합니다. 여러분도 빨리 말해 보십시오. 이곳이 어디입니까?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오리무중으로 안개만 꽉차 있으면 처음부터 찬찬히 열 번이라도 마음으로 캐물어 들어가십시오. 위 140번 선문답부터 다시 시작하여 마음으로 깊이 의심하면서 찬찬히 살펴보란 말입니다.
'조주가 손가락 하나를 든 이곳이 도대체 어디인가?' 이것이 마음을 깨닫는 훈련입니다. 반복해서 말합니다. 열 번, 백 번이라도 해답을 보려고 하지 말고 의심해 들어가십시오. 왜 불자로 답하지 않겠다고 했는가? 왜 손은 들었는가? 또 손가락은 왜 들었는가?
[출처] 조주록 강해 31(140-141)|작성자 byuns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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