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마음이 병드는건 별로 신경도 안 쓰지만, 마음은 병들어도 병든지 모르고 사는데 손가락 하나만 다쳐도 아이고 죽겠다고 병원 가 치료받고 그러잖아요 그쵸? 이러다 내 큰일나는거 아닌가 싶어가지고. 근데 그만큼 자기도 모르게 이 몸에 대해 애착을 많이 하고 있다는 겁니다. 보통 사람들이 몸을 나라고 생각하는 경향성이 되게 크고, 또 어떤 면에선 이 몸이란 것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늙어가고 병드는 이런 요소가 있어서 특히 욕계에 사는 존재들이 몸에 대해서 되게 많은 괴로움을 느껴요.
몸 자체가 고라.
이건 누구나 동의할겁니다. 나이 들어 가면 몸에서 오는 고통들이 되게 많기 때문에. 이거 때매 몸에 상당히 끄달리게 되거든요. 그래서 몸에 대해서 조금 벗어나는거. 몸에 대한 애착에서 벗어나는 것만 해도 상당히 수행이 많이 된 경지라고 할 수 있어요. 몸에 대해서 조금 초연해진다 할까? 그래서 부처님께서 몸에 대한 애착을 버리게 하기 위해서 몸이란 건 내것이라 생각하고 내몸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이런 네 가지 요소들의 결합니다.
조건에 의해서, 업에 의해서, 또 여러가지 조건에 의해서 사대가 이렇게 임시로 모여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건 소멸되기 마련인 법이니까 여기에 대해서 내것이라든가, 나의 것이라든가, 나라든가 이런 애착을 가지지 말라. 이런 식으로 말씀하신 거죠.
근데 이 몸이 단지 사대의 모임에 불과하다면, 이 몸을 통해서 항상 의식이 일어나잖아요 그쵸? 몸을 통해서 마음이 일어나. 눈과 형상이 부딪히면서 일어나고, 그래서 이 몸이란 게 우리가 일반 욕계 존재들한텐 굉장히 중요한 수단이 되거든요. 몸을 통해서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맡고 받아들인 건 막 의식으로 생각하면서 이리저리 우리 의식 세계를 구성하는 거라서 그래서 이렇게 하면서 자기가 본 것 중 맘에 드는 건 어떻게 합니까? 마음에 드는건 싫어해요?
마음에 드는건 막 집착하고 원하지 않는 대상을 막 싫어하고 이런 식으로 마음이 작용하잖아요. 그런게 탐욕이고 성냄이고 이렇단 말이예요 그쵸? 왜냐하면 이게 어리석어서 그렇습니다. 그냥 조건 따라 일어나는 거고 내것이라 할만한게 없고 세상 자체가 그렇게 무상한 것이고 원래 실체라 할만한 것도 없고 공한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면 그냥 일어난대로 보기만 하지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이렇지 않을 텐데 그거에 대한 어리석음이 있으니까 그렇단 말이예요.
그래서 이런 것들이 인제 좋아하고 싫어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써 좋은 하나의 지혜로 부처님께서 뭘 설하셨냐면,
땅을 닮은 수행을 해라.
이렇게 말씀하시죠. 우리 몸이 사대란 걸 하나의 기반으로 본다면 땅을 닮은 수행을 하란 무슨 말이겠어요? 여러분 이 대지에 똥을 버리거나 오줌을 버리거나 침을 뱉거나 깨끗한 걸 버리거나 더러운 걸 버리거나 땅이 왜 나한테 더러운 걸 버리냐고 이렇게 싫어하거나 좋아하지 않잖아요. 땅이란 건. 대지는 워낙 넓고 포용력이 있어 어떤 걸 버려도 그걸 수용하듯이 우리가 어떤 대상을 만나도 그걸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원하는 대상이나 싫어하는 대상과 접촉이 되더라도 그걸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수용하고 이해하는 것. 그렇게 하는 것이 땅을 닮은 수행이라 얘기한다는 거죠.
그래서 라훌라에게 그렇게 얘기합니다. 땅을 닮은 수행을 해라. 또 이 물의 요소를 설하면서 물을 닮은 수행을 해라. 바다에다가 깨끗한게 들어간다고 바다가 좋아하고 더러운게 들어간다고 바다가 싫어하지 않는다. 바다에 어떤게 들어가더라도 그 속에서 소화하듯 물을 닮은 수행을 해라.
그리고 불도 마찬가지라는거죠. 깨끗한 것을 태운다고 불이 좋아하고 더러운 것을 태운다고 불이 싫어하지 않죠. 깨끗한 것이 있든 더러운 것이 있든 다 그대로 태워버리는 불처럼 여러분 마음도 좋은게 부딪히든 나쁜게 부딪히든 그거에 대해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이렇게 대응하지 말라. 바람도 그렇죠. 깨끗한게 날리기도 하고 더러운게 날리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람이 이건 좋고 이건 나쁘다 이러지 않는단 말이죠. 그렇게 해서 바람을 닮은 수행을 해라. 또 허공이란건 흔적이 없잖아요. 바람이란 건 머물지 않는다는 거죠. 그래서 그와 마찬가지로 어떤 대상을 만나도 그렇게 보지 말라.
그래서 이걸 우리 몸이란 건 지수화풍공, 다섯 가지 요소. 불교 경전에선 6대를 이야기하는게 많아요. 육대란건 지수화풍공은 물질에 대한 거고, 식이란게 있어요. 그건 우리 정신에 대한 건데 여기선 주로 오대만 설명하셨는데. 물질을 관찰하면서 물질에 대한 땅의 요소도 그렇고 물의 요소도 그렇고 내것이라 할만한게 없고, 땅이 갖고 있는 속성, 불이 갖고 있는 속성, 여러분 의식이 대지와 같이 광할해지고 태양과 같이 바다와 같이 광활해지면, 의식이 종지 안에 든 물처럼 되면 조그만게 들어와도 바로 오염돼 버리고 그렇잖아요.
여러분들이 집착하고 싫어하는게 없으면 의식이 아주 한계가 없어지면서 어떤 게 들어가도 그걸 다 소화할 수 있을 정도의 마음 상태가 된다는거죠.
그런 땅을 닮은 수행, 물을 닮은 수행, 불을 닮은 수행, 그리고 바람을 닮은 수행, 허공을 닮은 수행을 해라. 그러면 네가 어떤 대상이 나타나도 거기에 대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마음 없이 우리가 대상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땅 물 불 바람 허공을 닮으면
마음에 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접촉이 일어나도 그런 것이 마음을 사로잡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라훌라에게 가르칩니다.
여러분들도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이 다 조건 따라 생겼고 내것이라 할만한게 없단 걸 이해하면 어떤 게 나타나도 다 조건 따라 일어난 것이고 내것이라 할만한 것도 없다. 그냥 그걸 수용하고 그 대상을 수용하고 거기에 지혜롭게 대처하냐가 중요한거지 이걸 밀어내고 싫어하고 이런 쪽으로 반응하지 않는 아주 큰 마음이 될 수 있다 이런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그래도 화가 나고 그럴 수 있을 거 아녜요. 이렇게 보란다고 이렇게 봐 지면 얼마나 쉽겠어요 그쵸?
부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건 방향성입니다.
여러분들이 계속 이런 방향으로 마음을 쓰도록 노력해서 계속 반복하다 보면 여러분들의 마음의 길이 바뀌는 거예요. 맨날 집착하고 싫어하는 이런 마음이 그렇지 않은 마음 상태로 전환되도록 워낙 부처님 말씀이 쉽고 단순하니까, 말은 되게 쉬워요. 근데 그걸 실천하긴 되게 어려워요.
중국 선사들 이야기 중 들은 이야기가 있어요. 어떤 제자가 찾아가서 '스님 수행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니 '악을 행하지 말고 선을 잘 실천해라' 했어요. 그러니 제자가 픽 웃으며 그런 말은 세 살 먹은 애도 하겠다고 투덜대니,
세 살 먹은 애도 하는 말이지만 여든 먹은 노인도 행하기 어렵다.
이렇게 이야기하거든요. 말 자체야 누구나 하기 쉽지만 그걸 실제로 그렇게 행하는게 어려운 거예요 불교는.
여러분들 수행이란 게 원래 아는 것과 행하는 건 많이 다릅니다. 여러분 많이 안다고 잘 행해지는건 아니예요.
우리가 꼭 필요한 걸 알고 그걸 반복적으로 행하는 것.
계속 그렇게 노력하고 그걸 자기 몸과 마음에 습관이 되도록 익숙해지도록 노력하는 과정인 거지 한 마디 듣고 팍 바뀌고 그렇게 되는 건 쉽진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과거생부터 굉장히 많은 바라밀을 닦았다거나 현재 열심히 해서 준비가 잘 돼 있는 사람에겐 그런게 가능할지 몰라도 일반적으론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그렇게 됐을 땐, 제가 다 설명드리진 않겠는데 기본적으로 탐욕이 일어날 땐 사대를 닮은, 오대를 닮은, 땅의 요소를 닮은, 물의 요소를 닮은, 불의 요소를 닮은, 바람의 요소를 닮은 수행을 하더라도 그게 잘 안 될 때는 그 대상을 뭐로 보느냐면 무상을 인식하는 수행을 닦아라. 무상이고 무아이고 괴로움이란 걸 인식하면 그게 놓아지며 집착을 버릴 수 있겠죠. 그렇게 하면 자만이 제거될거다.
무상함을 관찰하면서 자만을 버리기 쉽습니다.
보통 자만이란 게 내가 잘난 게 영원할 거라 생각하는데, 무상이란 영원한 건 없다는 거죠.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그 사람을 뛰어넘는 사람이 반드시 나옵니다. 그런 것에 대한 인식. 무상고무아란 인식을 닦으면 그런 거에 대한 마음을 버릴 수 있고, 대표적으로 탐욕이 일어날 땐 뭐를 닦으라 했냐면, 부정관을 닦아라. 자꾸 그거에 집착이 달라붙을 땐 내가 집착하는 대상의 달콤한 면을 보기 때문이거든요. 그거에 반대되는, 좋은 면만 있는게 아니라 아름답지 않은 면도 있다는 걸, 안 좋은 면이라기 보단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걸 중화시켜 주는 거죠. 그렇게 함으로써 탐욕이 제거된다.
그리고 성냄이 일어날 땐 자애나 연민이나 더불어 기뻐함이나 평온을 닦아라. 자비희사 라고 들어봤죠 그쵸? 자애는 남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고, 연민은 남의 고통을 들어주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잔인한 사람은 어떻습니까? 남이 막 고통받는 걸 보고 즐기잖아요. 어릴 때 여러분들도 나쁜 짓 한 적 있죠? 동물들 막 괴롭히며 좋다고 웃고 그런거. 이런게 잔인한거죠. 연민심이 없어서 그런거죠. 남이 고통받는 걸 들어주는게 연민입니다.
또 더불어 기뻐함이란 건 남이 잘된 걸 질투하지 않고 잘했다 '사두~사두~사두~'하면서 다른 사람이 잘한 것에 대해 같이 기뻐해주면서 그런 화가 싫어하는 마음을 극복하는 거죠.
평온이란 건 중립적인 마음입니다.
어떤 것을 좋아하거나 싫어하지 않고 평온하게 바라봄으로써 화를 버릴 수 있고.
그래서 이 사무량심은 화를 버리는 데 대표적인 마음 상태. 여러분들 이건 나중에 기회가 되면 자세히 설명드리겠지만 사무량심을 계발하는건 화의, 부처님께서 전체적으로 번뇌를 버리는 거에 대해 설한 것도 있지만 어떤 번뇌에 특화돼서 말씀하신 대표적인 게 탐욕은 부정관, 성냄은 자애관 또는 자비관 사무량심의 대표로 이야기하는 거죠. 그렇게 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여러분들 일상 속에서 수행해 나가시면, 앉아서만 수행하는 거라 생각하면 절대 안됩니다. 부처가 앉아서만 부처라면 옛날 선사들이 하듯 우리 돌부처가 젤 대단한 부처겠죠. 근데 우린 살아서 사람들과 만나고 일상 생활을 하잖아요. 그런 사람들과 부딪힘 속에서 번뇌가 작용하지 않는게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쪽에서도 우리 마음에 장애가 일어나지 않도록 훈련해야 돼요. 좌선 상태에서만 훈련하는게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수행을 꾸준히 이어갔을 때 그래야 진짜 바른 삼매를 닦게 됩니다. 그걸 잘 이해하심 좋을 거 같고요.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출처] 일상에서의 수행(4/4)-제따와나 일묵스님|작성자 넝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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