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셨어요?
일요법회는 우리가 한달에 한번씩 하는데요, 오늘은 불교 공부를 할 때 제가 여러 많은 사람을 경험해 보면서 가장 많이 느낀 것 중 하나가 불교에서 바라보는 관점하고 세속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좀 다른데 그 두 가지를 구분하지 못하고 세속적인 관점에서 불교를 이해하려 하면 불교가 어렵고 잘 이해안되는 측면이 있고, 그래서 이걸 소위 말해서 견해라는 건데 그 견해가 바로 잡히지 않아서 계속 거기서 충돌이 내면의충돌이 있으면서 불교를 이해하기 어려운 그런 부분이 많은거 같아요. 그런 견해의 차이 부분, 그래서 이걸 세속적으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바라보는 관점하고 부처님이 바라보는 관점이 어떻게 다른지 이해해야 불교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겉돌게 되고 불교의 본질적인 모습을 이해하기 어려워요.
특히 부처님께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이 현상계를 바라보고 그것을 정리한 것을 우리가 법이라고 이야기하죠. 여러분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법이란 말을. 그래서 이 법이란 것은 법을 이해하는 것은 불교를 이해하는 것과 일정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오늘은 이 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드리려 합니다.
불교가 한마디로 부처님께선 당신의 가르침을 괴로움을 소멸하기 위한 가르침이다.
괴로움을 벗어나 소멸하는 가르침이라 누누이 말씀하셨는데, 특히나 세속적으로도 진리란게 있잖아요. 학문을 함에도 물리학적으로 이 세상은 어떻게 구성돼 있고. 물리학적 이론들이 있죠. 질량보존의 법칙이라든가. 여러가지 이론들이 있습니다. 그런 세속적인 진리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의 차이가 뭔지 이런 걸 먼저 이해하고 부처님이 보신 관점을 받아들이고 그렇게 돼야 불교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데요, 이 견해가 바뀌는 이 부분이 우리가 깨달음의 영역에서도 견해가 완전히 바뀌어서 부처님이 말씀하신 관점으로 확고한 믿음이 생긴 존재를 수다원이라고 할 정도로 이 견해의 변화가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거기에 대해 조금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첫째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데 하나는 세속적인 측면과 하나는 부처님의 관점이예요. 붓다라는 것은 아시다시피 깨달은 존재를, 진리를 깨달은 존재를 붓다라 하는 거죠. 부처님같이 진리를 깨달은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하고 일반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어떤 부분에선 같고 어떤 부분에선 좀 다릅니다. 근데 특히나 제가 아까 서두에 말씀드렸듯 불교는 뭐에 대한 가르침이라 말씀드렸습니까?
살아 있는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괴로움이 뭔지를 먼저 이해하고 그 괴로움을 어떻게 소멸할 것인가가 기준점이 돼 있는 거죠.
그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고 할까요. 그 관점에서 현상계를 바라보기 때문에 차이가 나는 겁니다.
그래서 첫째는 세속적으로 우리가 어떤 현상계를 분류하고 이해할 때는 가장 대표적인게 그것이 가진 의미적인 측면도 있지만 또 하나는 소통의 측면이 아주 강하죠. 예를 들어 이걸 녹음기라고 이름 붙이면서 이런 모양을 가진 걸 녹음기라 이름 붙이면 누구한테라도 녹음기 하면 서로 통하는 구태여 이걸 보지 않아도 서로 이해되는 부분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소통과 편의성. 그런 것이 중요한 기준점으로 되서 우리가 현상계를 분류하고 이름 붙이는 작업을 하는 거죠. 그렇게 해서 얻어진 여러가지 이론이라든가 나름대로 진리의 모습들을 세속적인 진리-속제라고 이야기하죠. 세속의 관점에서 얻어진 진리다. 그걸 세속의 진리라고 이야기하는데요.
근데 이 세속적인 진리와 깨달은 분 부처님께서 괴로움을 이해하고 벗어난 관점에서 보는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같은 측면도 많이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뭐냐면, 그 기준점이 괴로움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과 이것이 괴로움이다, 행복이다라 생각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세속적인 관점과 부처님의 관점이 정반대입니다.
헷갈릴 수 있어요. 내가 생각할 때 이게 맞는데 왜 부처님은 저렇게 말씀하셨을까 이런 부분에서 계속 혼동이 있게 되는거죠. 그래서 부처님은 깨달음의 눈으로, 부처님께서도 세속 교육을 다 받았을 거 아니예요. 세속적인 이해 방식을 다 갖고 있어요. 그렇지만 괴로움과 행복에 대한 인식을 들여다 보니 괴로움과 행복에 대한 이해, 그거에 대한 통찰은 당신이 보는 눈과 세속 사람들이 좇아가는게 다른 거예요.
완전히 다른 거죠.
그래서 그걸 좀 정리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줌으로써 누구나 이 법을 들은 사람들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정리하신거.
이걸 우리가 한마디로 말해서 법이라고 표현합니다.
법은 부처님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본 것을, 특히 그 기준점이 되게 중요한데 일반적인 물리학이라든가 수학이라든가 이런 디테일한 것까지 관심을 가졌다기보단 생명체를 가진 존재가 태어났을 때 그들이 가진 괴로움을 어떻게 버릴 것인가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기때문에 괴로움을 버리기 위해선 괴로움이 뭐고, 그와 반대 괴로움이 소멸된 완전한 행복이란 것이 어떤 것이고, 그걸 어떻게 벗어나는가에 관한 통찰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가르침이 바로 법이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이렇게 정의할 수 있어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 우리가 보통 법문이라 하고 법을 배운다 법을 공부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괴로움에서 완전히 벗어난 부처님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봤을 때 이것은 뭐다라고 정리한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심 좋을거 같아요.
그럼 이 두 가지가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요, 이런 대략적인 깨달은 사람의 눈으로 본다는건 도대체 뭘 의미하느냐를 살펴볼 필요가 있겠죠. 깨달음의 눈으로 본다는 것은 단순히 이런 사물을 볼 때 이런 사물을 그냥 편의성, 소통의 편의성에 의해서만 이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사물이 갖고 있는 속성, 특징, 성질, 그 사물이 가지고 있는 실상을 바라보는 것에 차이점이 있습니다.
실상을 바라본다고 할 때 그 실상이라고 하는 것도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그 기준이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거, 어떻게 하면 괴로움을 소멸할 것인가 하는 그 기준에서 다시 말하면 괴로움을 벗어나게 하기 위한 그 기준에서 이런 것을 이해했다는 것을 여러분이 이해하는 것이 되게 중요합니다. 내가 예를 들어서 괴로움에서 벗어난 사람이예요. 부처님은 깨달음 얻었으니 괴로움에서 완전히 벗어났는데, 내가 괴로움에서 벗어난 원인을 분석해 보고, 내가 괴로움에서 어떻게 벗어났는가 생각해 보니까 사람들이 인식이 왜곡돼 있더라, 사물을 볼 때 잘못 보고 있다는 그런 부분을 바로잡는 쪽으로 가르침을 설하고 또 보통 우리가 원인 자체가 어떤 거에 대한 집착 때문이라고 보고 있는데 그라믄 그 집착을 버리는 데 도움이 되는 그런 현상에 대한 이해.
그런 방식으로 현상계를 분류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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