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성스님 100

빠알리어 경전의 조직 - 나누는 법 - 마성스님

빠알리어 경전의 조직 - 나누는 법 마성 지음 한자문화권에서 팔리어를 표기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팔리어를 원음 그대로 음사(音寫)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팔리어를 한자로 의역(意譯)하는 방법이다. 두 표기 방법 모두 각양각색이다. 여기에서는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처음 나오는 팔리어 고유명사는 두 가지 표기 방법을 병행했다. 즉 한글 음사와 동시 로마자와 한자를 병기(倂記)하는 방법이다. 단 단어가 너무 길거나 한번 이상 나온 단어일 경우에는 이러한 절차를 생략하였다. 팔리문헌의 한문 명칭은 일본의 에 주로 의존했으며, 경전의 제목은 을 기준으로 삼았다. 단 위의 두 문헌에서도 한자가 아닌 일본어로 음사한 것은 팔리어 원음을 한글로 표기했다. ---------------------..

마성스님 2021.03.14

마성스님의 아함경 강의 <7>

오온의 무상·고·무아를 있는 그대로 바르게 관찰하면 오온에 대해 싫어하는 마음 일으키고 탐욕 떠나 해탈하게 돼 색(色)은 과거에 속한 것이건 미래에 속한 것이건 현재에 속한 것이건, 안에 있는 것이건 밖에 있는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아름답건 추하건, 멀리 있는 것이건 가까이 있는 것이건, 그 모든 색은 나도 아니요, 나와 다른 것도 아니며,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도 아니다’고 알아야 하나니, 이것을 사실 그대로 아는 것[如實知]이라 하느니라. 수(受)·상(想)·행(行)도 마찬가지이며, ‘식(識)은 과거에 속한 것이건 미래에 속한 것이건 현재에 속한 것이건, 안에 있는 것이건 밖에 있는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아름답건 추하건, 멀리 있는 것이건 가까이 있는 것이건, 그 모든 식은 나도 ..

마성스님의 아함경 강의<6>

오온에 대해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탐욕을 완전히 없애며, 어떤 번뇌도 일으키지 않아 마음이 바르게 해탈하면 이것이 비구의 ‘현법열반’ “지혜로써 제법의 무상·고·무아를 통찰해서 자아에 대한 고정관념을 극복하지 못하면 결국은 있다·없다, 영속한다·단멸한다 는 견해의 그물에 걸리고 만다. 삼매나 선은 그 자체로써는 결코 목적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지혜로써 해탈·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일 뿐” 향법경(向法經) [원문] (二七) 如是我聞: 一時, 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 有異比丘來詣佛所, 頭面作禮, 각住一面, 白佛言: “如世尊說法次法向, 云何法次法向?” 佛告比丘: “善哉! 善哉! 汝今欲知法次法向耶?” 比丘白佛: “唯然, 世尊!” 佛告比丘: “諦聽! 善思! 當위汝說. 比丘! 於色向厭·離欲·滅盡, 是名..

마성스님의 아함경 강의<5>

있는 그대로, 올바른 지혜로 관찰하게 되면 교만한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다 "붓다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은 오온이 ‘나[我]’라고생각하고 오온에 집착한다. 이처럼 오온에 집착하는 것을 오취온(五取蘊, pancupadanakkhandha)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오온에 대한 집착, 즉 오취온 때문에 모든 괴로움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이다" (二三) 如是我聞: 一時, 佛住王舍城迦蘭陀竹園. 爾時, 尊者羅후羅往詣佛所, 頭面禮足, 각住一面, 白佛言: “世尊! 云何知·云何見我此識身及外境界一切相, 能令無有我·我所見·我慢·使·繫著?” 佛告羅후羅: “善哉! 善哉! 能問如來: ‘云何知·云何見我此識身及外境界一切相, 令無有我·我所見·我慢·使·繫著?’耶?” 羅?羅白佛言: “如是, 世尊!” 佛..

마성스님의 아함경 강의<3>

붓다의 교설은 괴로움에 허덕이는 인간 존재 그 자체를 문제 삼아 “불교에서는 개인의 자아나 영혼의 존재를 부정한다. 이러한 부정은 붓다 교설의 핵심적 요소인 무아(無我, anatta)의 이론에 담겨져 있다. 불교는 한마디로 무아의 가르침이다. 그런데 이 무아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이른바 ‘참나’, ‘진아(眞我)’, ‘일심(一心)’, ‘진여(眞如)’ 등을 존재론적인 실체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무아의 이론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정사유경(正思惟經) (二) 如是我聞: 一時, 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 世尊告諸比丘: “於色當正思惟, 觀色無常如實知. 所以者何? 比丘! 於色正思惟, 觀色無常如實知者, 於色欲貪斷; 欲貪斷者, 說心解脫. 如是受..

마성스님의 아함경 강의<2>

마음이 해탈한 사람은 스스로 증득 "바르게 관찰하면 곧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기고,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기면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며,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면 이것을 심해탈(心解脫)이라 하느니라" 무상경(無常經) (一) 如是我聞: 一時, 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 世尊告諸比丘: “當觀色無常, 如是觀者, 則爲正觀. 正觀者, 則生厭離; 厭離者, 喜貪盡; 喜貪盡者, 說心解脫. 如是觀 受·想·行·識 無常, 如是觀者, 則爲正觀. 正觀者, 則生厭離; 厭離者, 喜貪盡; 喜貪盡者, 說心解脫. 如是, 比丘! 心解脫者, 若欲自證, 則能自證: 我生已盡, 梵行已立, 所作已作, 自知不受後有. 如觀無常, 苦·空·非我亦復如是.” 時,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

종교의 대사회적 기능

종교의 대사회적 기능 종교의 기능은 크게 본래적 기능과 수단적 기능 둘로 구분할 수 있다. 종교의 본래적 기능이란 종교 자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기능을 말한다. 이를테면 자기종교의 교리나 신앙을 통한 정신적 위안, 긴장 해소, 죽음에 대한 공포 극복 등이다. 종교는 본래 성스러운 세계에 대한 인간의 향수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종교의 수단적 기능이란 종교의 본래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기능을 말한다. 이를테면 종교의 제의(祭儀)가 이에 해당될 것이다. 제의는 예배, 기도, 노래, 춤, 강설 등 다양한 행위로 나타난다. 특히 그 중에서 종교는 사회적 기제(機制)를 통한 표상으로 표출된다. 종교는 언제나 집단을 형성하여 움직인다. 그 때문에 때로는 종교권력과 국가권력 간에 대립하기도 하였..

마성스님 2021.01.03

마성스님의 아함경 강의<1>

“이라 지칭할 때도 그것이 오직 하나의 경전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매우 많은 경전의 집록(集錄)이다. 붓다는 생애의 대부분을 한 장소에 머물지 않고 유행하면서 전도·교화하였다. 붓다는 이르는 곳마다 기회가 닿는 대로 청중들의 근기에 따라 설법하였다. 그 교설들은 그때 그때의 사정에 따라 가능한 한 간단명료하게 설한 것으로 보인다” 아함경이란 무엇인가 불교경전은 크게 초기경전과 대승경전 두 가지로 구분된다. 두 가지 모두 ‘불교경전’이라고 불리지만, 그 성립사정은 전혀 다르다. 초기경전은 제1결집에서 정리된 ‘법(法)’을 기본으로 삼아 성립된 것이다. 그 ‘법’의 내용은 일찍이 붓다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붓다의 입멸 직후 그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스승의 교설을 서로 확인하고 전승한 것..

[각묵스님의 초기불교 산책] 나는 누구인가 ① 오온

초기불교의 기본 가르침은 교학과 수행의 둘이요, 교학은 온.처.계.근.제.연의 여섯으로 정리되고, 수행은 37보리분법으로 집약된다. 먼저 오온에 대한 개관을 해보도록 하자. 인류가 있어온 이래로 인간이 스스로에게 던진 가장 많은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일 것이다. 부처님께서도 당연히 이 질문에 대해서 대답하셨고, 중요한 질문이기에 아주 많이, 그것도 아주 강조하여 말씀하셨다. 그러면 부처님께서는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셨을까? 부처님께서는 초기경의 도처에서 간단명료하게 ‘나’는 ‘오온(五蘊, panca-kkhandha)’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라는 존재는 물질(몸뚱이, 色), 느낌(受), 인식(想), 심리현상들(行), 알음알이(識)의 다섯 가지 무더기(蘊)의 적집일 뿐이라는 것이다. 물질 느낌 인식 심리현..

각묵스님 2020.11.22

[각묵스님의 초기불교 산책] 초기불교의 핵심 - 해체해서 보기

초기불교의 핵심 - 해체해서 보기 뭉쳐두면 속고 해체하면 깨닫는다 무상.고.무아 각각 통찰하면 탐욕이 빛바래 해탈.열반 실현 이쯤에서 초기불교의 핵심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초기불교의 핵심을 한 마디로 말해보라면 필자는 주저 없이 ‘해체해서 보기’라고 자신 있게 대답한다. 이 해체라는 용어는 이미 초기불전 가운데서 나타나고 있는데 부처님 제자들 가운데 영감이 가장 뛰어난 분으로 칭송되며 시작(詩作)에 능했던 왕기사 존자는 (S8:8)에서 부처님을 “부분들로 해체해서 설하시는 분”이라고 찬탄하고 있다. 여기서 해체는 빠위밧자(pavibhajja)나 위밧자(vibhajja)를 옮긴 것이다. 그리고 위밧자(vibhajja)라는 술어는 빠알리 삼장을 2600년 동안 고스란히 전승해온 상좌부 불교를 특징짓는 말이..

각묵스님 2020.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