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도송 32

열반송 모음-본래 한물건도 없다

◈ 옛 스님(韓.中.日)들의 禪詩 . 悟道頌... : 네이버블로그 (naver.com)​석가모니(釋迦牟尼)自燈明 法燈明(자등명 법등명)自燈明 :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法燈明 : 진리를 등불로 삼고自歸依 : 스스로에 의지하라法歸依 : 진리에 의지하라​보리달마(菩提達磨) (?~534?) 열반송(涅槃頌)​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 것은 그 손가락의 뜻이 달에 있고말로써 도를 표현하는 것은 그 말이 도에 있기 때문이다.말만을 귀담아 듣고 도를 돌아보지 않으면 도를 안다고 할 수 없고손가락만을 바라보고 달을 보지 않으면 달을 알지 못한다.지극한 도를 아는 사람은 항상 언어 밖의 소식을 묘하게 깨닫고형상 이전의 실재를 얻게 된다.​​祖慧能(육조혜능 638∼713) 臨終偈(임종게)​이 세상 모든 것 참이 아니니참 아닌 ..

오도송 2024.06.16

오도송(悟道頌)<無學大師>

오도송(悟道頌) 靑山綠水眞我面청산녹수진아면 平平仄仄平仄仄 明月淸風誰主人명월청풍수주인 平仄平平平仄平 莫謂本來無一物막위본래무일물 仄仄仄仄平仄仄 塵塵刹刹法王身진진찰찰법왕신 平平仄仄仄仄平 푸른 산 푸른 물이 나의 참모습이니, 밝은 달, 맑은 바람의 주인은 누구인가. 본래부터 한물건도 없다 이르지 마라. 온 세계 티끌마다 부처님 몸, 아니런가. 이 게송(偈頌)은 무학대사(無學大師) 칠언절구(七言絶句) 평기식(平起) 오도송(悟道頌)이다. 압운(押韻)은 면(), 인(人), 신(身)이다. 기승전결(起承轉結) 평측(平仄)은 근체시(近體詩) 평측(平仄)은 맞지 않다. 무학대사(無學大師) 네이버 자료는 이렇다. ”법명은 자초(自超), 속성은 박(朴)씨이며 호는 무학(無學) 당호는 계월헌(溪月軒)이다. 경상남도 합천군 (陝川..

오도송 2023.07.02

열반송(涅槃頌) 모음

부설(浮雪)거사(?~7??) 열반송 目無所見無分別 보는 것이 없으니 분별이 없고 耳廳無聲絶是非 듣는 바가 없으니 시비가 일지 않는다 分別是非都放下 분별 시비 다 내려놓고 但看心佛自歸依 내 마음 부처님께 귀의할 뿐 구인사 설법보전 외벽 부설거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의 사람으로 속명은 진 광세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재주가 비범하였으며 아이들끼리 놀 때에도 다른 아이들과 달리 어른스러웠다. 뿐만 아니라 스님을 보면 반가워하고 살생하는 것을 보면 슬퍼하더니 홀연 불국사로 출가하여 법명을 부설(浮雪)이라 하였다. 부설은 도반(道伴)인 영희(靈熙), 영조(靈照)스님과 함께 묘적암을 짓고 수행하고 있었다. 그 뒤 문수보살을 친견하기위하여 오대산으로 가던 중 두릉(杜陵, 현 전북 김제군)에 당도하여 불심이 깊은..

오도송 2023.04.16

선사들의 오도송

선사들의 오도송 한산(寒山)선사 (6??~ 6??) 오도송(悟道頌) 吾心似秋月 내 마음은 가을 달과 같고 碧潭淸皎潔 푸른 연못은 맑아, 희고 깨끗하구나 無物堪比喩 무엇으로도 견줄 바가 없으니 如何敎何說 어떻게 나를 졸라 말하라고 하는고 了然比丘尼(묘연비구니) 오도송(悟道頌) 五蘊山頭古佛堂 오온의 망상 무더기가 그대로 고불당인데 毘盧晝夜放毫光 비로자나 부처님이 주야로 백호광명을 항상 놓고 있네 若知此處非同異 만약 여기에서 異同(이동)없는 이치를 안다면 卽時華嚴遍十方 곧 이 화엄장엄이 시방세계에 두루 하리라 원효(元曉)대사 (617~686) 오도송(悟道頌) 靑山綠水眞我面 푸른 산 푸른 물이 나의 참모습이니 明月淸風誰主人 밝은 달, 맑은 바람의 주인은 누구인가 莫謂本來無一物 본래부터 한물건도 없다 이르지 마라..

오도송 2023.02.19

生也祗麽-대혜선사의 열반송

生也祗麽 死也祗麽 有偈無偈 是甚麽熱 생야지마 사야지마 유게무게 시삼마열 사는 것도 그저 그렇고 죽는 것도 그저 그렇다. 게송이 있든 없든 무얼 그리 마음 쓰는가? 해설 ; 이 게송은 대혜(大慧,1089~1163)선사의 열반송이다. 선사는 북송 말기 지금의 중국 안휘성 선국현 해씨(奚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16세에 동산 혜운원의 혜제(惠齊)대사에게 출가하였다. 17세에 비구계를 받고 여러 곳을 편력하면서 수행하다가 원오(圓悟)선사에게 참례하고 최후의 깨달음을 성취하였다. 위의 게송은 열반송으로서 매우 빼어난 게송이라고 칭송을 받는다. 열반송이란 자신의 한 생을 마지막으로 결산한다는 의미가 있으며 삶과 죽음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뜻도 포함되어 있어서 수행자들은 죽음을 앞두고 의례히 게송 하나를 남기는 것이..

오도송 2022.04.24

한국 역대 선사의 오도송

七日關中亦有言(칠일관중역유언) 威音雷若震乾坤(위음뢰약진건곤) 欲聆無說傳千古(욕영무설전천고) 秋夜寒鐘掛寺門(추야한종괘사문) 7일 동안 관중에서 부처님의 법음소리 들었네, 위엄스런 우레소리 천지를 진동했다. 말없이 말한 천고의 진리를 알고 싶었는데, 가을밤 찬 종소리 절문에 걸렸도다. – 영파선사 – 知心生故種法生(지심생고종법생) 心滅故 不二(심멸고촉루불이) 마음이 생기면 만물의 갖가지 현상이 일어나고, 마음이 멸하면 무덤, 해골물이 둘이 아님을 깨달았구나. – 원효대사 – 忽聞人語無鼻孔(홀문인어무비공) 頓覺三千是我家(돈각삼천시아가) 六月 巖山下路(유월연암산하로) 野人無事太平歌(야인무사태평가) 홀연히 콧구멍 없다는 말을 듣고, 비로소 삼천대천세계가 내 집임을 깨달았네. 유월 연암산 아랫길에, 나 일없이 태평..

오도송 2022.04.10

부처님 오도송과 열반송

아생이진(我生已盡) 나의 생은 이미 끝났다 범행이립(梵行已立) 수행은 이미 다 이루었다 소작이작(所作已作) 해야 할 일은 이미 했다 불수후유(不受後有) 다시는 생사를 되풀이 하지 않는다. 이것이 부처님의 오도송입니다. 그리고 에는 부처님의 열반송이 있습니다. 제행무상(諸行無常) 모든 것이 무상하다 시생멸법(是生滅法) 바로 생멸법이다 생멸멸이(生滅滅已) 생멸이 소멸하여 그치면 적멸위락(寂滅爲樂) 적멸이 즐거움이다. 모두 생사윤회에서 벗어난 생사해탈의 즐거움을 말했습니다. 생멸이 소멸하여 그 피는 것이 생사해탈이고 생사해탈이 이루어지면 적멸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적멸의 즐거움이 해탈지견이며 열반락입니다. 해탈지견의 열반락은 선정에 비교할수 없이 수승합니다. 구족신통력(具足神通力) 신통력을 갖추고 광수지방편(..

오도송 2020.12.06

홍일연음 - 임종게

臨終偈 임종게 弘一演音 홍일연음 君子之交 군자지교 其淡如水 기담여수 執象而求 집상이구 咫尺千里 지척천리 問余何適 문여하적 廓爾忘言 곽이망언 華枝春滿 화지춘만 天心月圓 천심월원 군자가 사귀는 것은 담백하기가 맑은 물과 같고 눈 감고 코끼리를 더듬으면 가까운 거리가 천 리와 같다 어디로 가야 편안할지 내게 물으면 눈앞에 펼쳐진 넓은 세상 나는 말을 잊노라 꽃이 핀 가지에는 봄의 뜻이 가득하고 높은 하늘 한가운데 둥근 달이 떠있다 홍일대사는 출가 전에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던 예술인이었는데 그가 만든 노래들은 마치 날개라도 달린 것처럼 세상 속으로 번져나갔다. 그러나 출가 후에는 세속적인 문예 활동을 하지 않았고, 입과 붓 모두 오로지 부처의 가르침 하나만을 말하고 쓸 뿐이어서 묵보墨寶를 청하는..

오도송 2020.09.20

이단원의 견도송見道頌 - 사는 동안 아는 것 하나 없다가

금산담영金山曇穎 선사는 송나라 때 임제종 승려로 속성은 구씨丘氏이고 호는 달관達觀이며 저장浙江 사람이다. 열세 살 때 용흥사龍興寺로 출가한 뒤 열여덟 살 때 변경汴京을 유람하면서 태위 이단원李端願의 화원에서 묵었다. 어느 날, 이단원이 선사에게 물었다. “스님, 한 말씀 여쭙겠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지옥이 있다고 하던데 지옥이 정말로 있는 것입니까?” 담영이 말했다. “여래께서 법을 설하시면서 ‘無’ 가운데 ‘有’를 말씀하셨는데, 눈으로 헛꽃을 보는 것처럼 있는 것 같아도 없고, 태위께서 지금 있는 것 가운데 없는 것을 찾는데 손에 물을 담아보면 없는 것 같아도 있는 것이니 실로 우습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눈앞에 있는 지옥은 보면서 어째서 마음속에 있는 천당을 보지 못하는 것일까요? 즐거움과 두려움이 마..

오도송 2020.09.20

임종게와 사리 - 법정스님

한 생애를 막음하는 죽음은 엄숙하다. 저마다 홀로 맞이하는 죽음이므로 타인의 죽음을 모방하거나 흉내 낼 수 없다. 그만의 죽음이기 때문에 그만큼 엄숙하다. 일찍부터 선가에서는 '마지막 한 마디'(이를 임종게偈 또는 유게遺偈라고 한다)를 남기는 일이 죽음의 무슨 의례처럼 행해지고 있다. 그것은 대개 짧은 글 속에 살아온 햇수와 생사에 거리낌이 없는 심경을 말하고 있다. 바로 죽음에 이르러 가까운 제자들에게 직접 전하는 생애의 마지막 그 한 마디다. 따라서 죽기 전에 시작詩作을 하듯이 미리 써놓은 것은 유서일 수는 있어도 엄밀한 의미에서 임종게는 아니다. 타인의 죽음을 모방할 수 없듯이 마지막 남기는 그 한 마디도 남의 글을 흉내 낼 수 없다. 그의 한 생애가 그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가장 그 자신다운 한..

오도송 2020.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