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 30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해설- 오형근

금강삼매경론 강의 1 서론 은 에 대한 논전論傳이다. 의 저자는 의 해설서인 은 원래 소疎이었는데 중국에 약소略疎가 들어왔을 때 경전을 번역하는 학자들이 그 내용이 너무나도 뛰어나서 소를 론論이라 고쳤다고 전하고 있다. 보통 인도의 대 학승 용수龍樹, 무착無着 세친世親등이 쓴 것을 논전이라 한다. 예로부터 중국이나 한국은 대 학자들 이라도 논사論師라고 붙이지 않고 논전도 말고는 없다. 당시는 중국 문화가 더 선진적이었으므로 중국에서 인정한 것이 더 공인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금강金剛의 뜻부터 알아보자. 금강은 인도의 학자들이 주로 쓰는 말인데 부처님 바로 직전 묘각妙覺과 부처님의 경지를 묘사할 때 금강이라는 말을 썼다. 금강삼매가 나타나는 경지는 十地(法雲地)의 뒤, 묘각의 앞에 있는 등각等覺으로 마지..

원효스님 2020.08.23

원효대사(元曉大師) (617∼686)

원효대사(元曉大師) (617∼686) 신라시대의 고승. 성은 설(薛)씨. 원효는 법명, 아명은 서당(誓幢) 또는 신당(新幢). 압량(押梁 : 지금의 慶山郡) 불지촌(佛地村) 출신. 잉피공(仍皮公)의 손자이며 내마(奈麻) 담날(談捺)의 아들이다. 648년(진덕왕 2) 황룡사에서 중이되어, 각종 불전을 섭렵하며 수도에 정진하였다. 650년(진덕여왕 4) 의상과 함께 당(唐)의 현장과 규기에게 유식학을 배우려고 요동까지 갔지만, 그곳 순라군에게 첩자로 몰려 여러날 갇혀 있다가 겨우 풀려나 돌아왔다. 10년 뒤, 다시 의상과 함께 해로를 통하여 입당(入唐)하기 위하여 가던 중, 해골에 괸 물을 마시고 "지리는 결코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터득하고 의상과 헤어져서 돌아왔다..

원효스님 2020.08.09

[원효] 6. 원효의 윤리관 下 - “戒相에 머무르지 않기에 계바라밀 갖춘다”

21세기 왜 다시 원효인가 ⑥ 원효의 윤리관 下 “戒相에 머무르지 않기에 계바라밀 갖춘다” 원효는 세속에 살되 물들지 않았던 범행장자 “작은 규율 어겨도 타인 위해선 적극 실천해야” 계율의 굴레에서 자유로웠던 원효와 혜공의 전설이 깃든 포항 오어사 전경. 이번에는 먼저 「보살영락본업경소」 서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제중도(二諦中道)는 곧 건너갈 길이 없는 나루며, 현묘하고 현묘한 법문(法門)은 더욱 들어갈 문이 없는 진리이다. 갈만한 길이 없기 때문에 유심(有心)으로 행할 수 없고, 들어갈 만한 문이 없기에 유행(有行)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그러나 대해에는 나루가 없지만 노를 저어 능히 건널 수가 있고, 허공에는 사다리가 없지만 날개 치며 높이 나를 수 있다. 이로써 알라. 길이 없는 길은 곧 길 ..

원효스님 2020.08.02

[원효] 5. 원효의 윤리관 上 - 계율 굴레에서 무애자재했던 ‘참’율사

21세기 왜 다시 원효인가 ⑤ 원효의 윤리관 上 계율 굴레에서 무애자재했던 ‘참’율사 한국불교사상 가장 자유로운 계율 해석 계를 알기에 오히려 계를 넘나들 수 있어 서당화상비가 발견된 경주 고선사지. 지금은 수몰되어 3층탑만이 경주박물관에 옮겨져 남아있다. 오늘 살펴볼 내용은 원효가 윤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윤리라는 것은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지켜야 할 도리에 관한 문제입니다. ‘윤리’를 가장 현실적으로 다뤄온 종교는 유교라 할 수 있습니다. 유교는 그야말로 사람과 사람사이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유교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종교가 소위 ‘계(戒)’를 통해서 이를 매우 강조해왔습니다. 그런데 대체적으로 계나 윤리라는 것이 자칫 잘못하면 아주 박제화되고, 정예화되고, 교조주..

원효스님 2020.08.02

원효의 화쟁사상이란 무엇인가?

원효(元曉)는 한국의 대표적인 승려이다. 실로 그는 이론과 실천의 양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위대한 불교인이었다. 그의 방대한 저작과 독창적인 저술은 국내에서만 그의 위대함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그가 어느 누구에 못지 않은 뛰어난 학승이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한국불교를 빛낸 많은 승려들이 대개의 경우 중국에 유학하였음에 비추어, 그의 업적은 오로지 국내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그의 위대함은 더욱 돋보인다. 바로 그가 주창한 사상이 화쟁사상(和諍思想)이다. ​ 일반적으로 화쟁사상이란 원효의 사상적 근본을 구성하는 화회(和會)와 회통(會通)의 논리체계를 말한다. 그러나 보다 의미의 폭을 넓히면, 원효(617∼686년) 이후 전통적으로 계승되어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온 화회와 회통의 사상을 ..

원효스님 2020.07.19

[이도흠] ■ 화쟁 철학과 탈현대 철학의 비교연구

화쟁 철학과 탈현대 철학의 비교연구 이도흠 한양대 교수 ▒ 목 차 ▒ 1. 머리말 2. 현대성과 탈현대성의 개념 3. 생태론 및 생성의 철학과 不一不二 4. 차이의 철학과 辨同於異 5. différance와 一心 6. 一心과 二門의 會通 7. 맺음말 [열린논단] 미국 클레어몬트 대학 과정철학연구소 주최 국제학술대회: “과정과 한” 원효의 화쟁사상을 탈현대 철학과 비교해 보았다. 화쟁의 불일불이는 존재를 과정과 생성의 관계로 파악하고 이 세계를 서로 깊은 관련을 맺는 하나의 시스템, 곧 부분과 전체가 서로 소통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부분이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부분인 관계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생성, 혹은 과정 철학과 유사하다. 인간과 자연, 인간과 지구상의 온 생명체를 서로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것..

원효스님 2020.07.05

원효와 의상에게 배웁니다. (2002. 11)

원효와 의상에게 배웁니다 (2002. 11) ​ (김상현 교수는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경상대학교를 졸업하고 단국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동국대학 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단국대 및 한국교원대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동국대학교 인문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성천아카데미의 에서‘ 원효와 의상’을 강의했다. 저서로『신 라화엄사상사』, 『역사로 읽는 원효』, 『한국불교사 산책』, 『신라의 사상과 문화』, 『한국의 차시』등이 있고, 한국차문화사 및 불교사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 ▶ 일전에 선생님께서 하신 말이 생각 납니다. 역사학자로서 동북아를 개관해 볼 때, 한∙중∙일을 통틀어 7세기가 특히 격동적인 시기여서 그 시대에 활동했 던 원효와 의상, 김춘추와 김유신 등을 주인공으로 해서 소 설을 한..

원효스님 2020.06.21

[이유나] 선(禪)의 관점에서 본 원효사상

선(禪)의 관점에서 본 원효사상 이유나(제주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석사학위논문 - 2013 년 2 월 ▒ 목 차 ▒ I. 서 론 II. 선불교(禪佛敎)의 심식설(心識說)과 수증론(修證論) 1. 능가경 (楞伽經)과 대승기신론 (大乘起信論)의 마음의 구조 2. 돈오(頓悟)와 믿음[信] III. 원효사상의 선적(禪的) 특성 1. 일심의 실천수행적 성격 2. 원효의 수증론(修證論) IV. 선(禪)의 관점에서 본 원효의 대중교화 방편(方便) 1. 원효 정토사상의 선적(禪的) 특성 2. 원효 계율관의 선적(禪的) 특성 V. 결 론 ■ 각 주 : I. 서 론 ▲ 위로 이 연구는 원효(元曉, 617-686)의 사상을 오늘날 동아시아 불교의 주류를 이루는 선불교(禪佛敎)의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시도이다. 원효는 중관(中..

원효스님 2020.06.14

동·서양적 사유의 대화가능성을 위한 방법론적 모색

동·서양적 사유의 대화가능성을 위한 방법론적 모색 ― 원효, 워즈워스, 미메시스 손현 (성결대학교) 1. 시작하는 말 통상적인 용례에 따라 일단 동양과 서양이라는 두개의 변별적 용어를 받아들이기로 하자. 그리고 필자는 최근 인문학적 화두로 부상한 ‘동·서양 적 사유의 대화가능성’이라는 주제에 주목한다. 상대적인 방위의 개념인 동과 서를 동양과 서양으로 고유명사화했을 때 그 차이는 단순한 구분을 넘어 서양중심적인 차별의 개념을 내포한다. 대부분의 동양 국가에서 ‘근 대화’란 ‘서양화’를 의미한 점에서 최소한 근대로 특징지어지는 시기에 이 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그러니까 서양주도적인 근 대화에 대한 자기반성의 국면으로서 ‘탈근대’로 불리는 1960년대 이후의 오늘날에 이르러, 동양과..

원효스님 2020.04.19

원효대사 오도송

元曉大師 悟道頌 靑山疊疊彌陀窟 蒼海茫茫寂滅宮 物物拈來無罣碍 幾看松頂鶴頭紅 겹겹이 펼쳐진 푸른 산은 아미타 궁전이요, 망망한 푸른 바다는 적멸궁이라. 물물마다 어느 것을 잡아와도 걸림이 없네. 몇 번이나 보았던가 소나무 위에 붉은 머리 학을. 1,2구는 분별이 끊어져 지금 그대로가 적멸이요, 세상이 온통 진여임을, 3구는 모든 것이 진여 아님이 없어 어느 것에도 걸림이 없음을 4구는 깨친 심처에서 본 실상을 읊으심. '몇번이나 보았는가'는 깨치고 나니 모든 것이 다 있는 그대로 진여실상이라는 것을 알았는데, 이 진여실상이라는 것이 없던 것이 새로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깨치기 전에 보았던 두두물물도 이미 진여실상이었다는 것. 이미 우리는 진여에 즉해 있다는 것을 말한다. - 高松- 출처 : 좋은 마음 글쓴..

오도송 2018.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