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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불교 흥망의 교훈

* 이 글은 불교평론과 경희대 비폭력연구소가 주관하는 ‘열린논단’(2013년 5월 23일)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완한 것이다. 본고의 전반부는 인도불교의 쇠망에 관한 현재까지의 여러 주장을 정리하고, 후반부에서는 필자의 생각을 많이 보탰다. 특히, E. H. Carr(1892~1982)의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라는 구절이 널리 회자되듯, 인도불교사에서 불교 쇠망 요인의 논의는 과거를 비추어 현재의 문제를 점검해보고, 바람직한 불교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토대가 되어야 한다는 의도로 발제한 것이다.​ 1. 인도, 불교유적만 있고 불교는 없다 ​ C. E. 1203년, 인도불교의 멸망의 해! 서력기원 1203년은 인도사 또는 인도불교사에서 불교가 자취를 감추게 된 해..

인도 철학 2024.04.07

아티샤의 명상요결 - 앨런 월리스, 황학구 번역, 청년사

- 앨런 월리스, 황학구 번역, 청년사 ​ 티베트인들이 로종 lojong 이라 부르는 마음수련법. 로종은 우리의 마음이 불안, 걱정, 덧없는 쾌락, 좌절, 희망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더러운 웅덩이가 아니라 깨끗한 기쁨의 저수지가 되도록 우리의 관점을 바꾸기 위해 설계된 것이다. 티베트 불교의 수행은 그저 조용히 앉아서 명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실재와 일치시키는 새로운 태도를 계발하는 것이다. 관점들은 마치 휘어진 척추처럼 교정이 필요하다. ‘로’는 태도, 마음, 지성, 관점을 의미, ‘종’은 훈련, 정화, 치료를 의미. 따라서 ‘로종’은 ‘태도의 훈련’으로 글자 그대로 번역할 수 있고, 여기서는 ‘마음수련 mind-training 이라 한다. ​ 인도불교의 스승들인 Maitriyogin 과 D..

티벳 불교 2024.04.07

세미나 중계-실천적 무아와 형이상학적 무아*

* 이 논문은 2018년 11월 10일 ‘자아와 무아, 오해와 진실’이라는 주제로 동국대 고순청세미나실에서 개최된 불교학연구회 추계학술대회에서 발표되었다. ​ 1. 시작하는 말 무아(無我, anattan)란 자아(我, attan)의 부정을 의미한다. 붓다가 이 교설을 내세운 이유는 윤회(輪廻, saṁsāra)가 종식된 해탈(解脫, vimutti)로 이끄는 데 있었다. “아라한에게는 내세울(施設) 윤회가 없다.”라는 경문은 무아를 실현한 아라한의 경지가 과연 어떠한지를 드러낸다. 과거와 미래와 현재는 자아 혹은 ‘나’를 중심으로 인과적 관계로 엮이게 된다고 할 수 있다. ‘나’ 혹은 자아에 매여 있는 한 자신과 타자, 안과 밖, 과거와 미래 등에 대해 초연하기란 불가능하다. 자아 혹은 ‘나’에 대한 집착이..

불교관련 2024.04.07

동산 양개(洞山良价: 807∼869)선사 어록

오가어록(五家語錄) 동산록 동산 양개 선사 1. 행록 스님의 휘(諱)는 양개(良价)이며, 회계(會稽) 유씨(兪氏) 자손이다. 어린 나이에 스승을 따라 「반야심경(般若心經)」을 외우다가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라는 대목에서 홀연히 얼굴을 만지며 스승에게 물었다. "저에게는 눈.귀.코.혀 등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반야심경」에선 '없다'고 하였습니까?" 그 스승은 깜짝 놀라 기이하게 여기며, "나는 그대의 스승이 아니다"라고 하더니 즉시 오설산(五洩山)으로 가서 묵선사에게 머리를 깎으라고 가르쳐 주었다. 21세에 숭산(嵩山)에 가서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사방으로 유람하면서 먼저 남전(南泉: 748∼834)스님을 배알하였다. 마침 마조(馬祖: 709∼788)스님의 제삿날이어서 재(齋)를 준비..

동산 어록 2024.03.24

법성게 원문과 해설

* 법성게 원문과 해설 ​ 法性圓融無二相 법성원융무이상 원융한 법의 성품 두 모습이 아니로다 ​ * 법의 본성(心色, 眞如法界)은 생사(부처와 중생)의 두 상을 초월 ​ 諸法不動本來寂 제법부동본래적 모든 법은 변함 없어 본래가 고요한데 ​ * 제법-삼라만상(유정,무정,일체만물)←법성에서 이루어짐(적정), 법은 상주불멸 ​ 無名無相絶一切 무명무상절일체 이름 없고 모습 없어 일체가 끊어지니. ​ * 허공과 같이 정적(淨寂)하여 일체의 이름과 형상이 없다. 분별망집에 의한 구분이 없음 ​ 證智所知非餘境 증지소지비여경 증득 지혜 근본 지혜 다른 경계 아니로다 ​ * 증지 - 수도로 증득하는 지혜 즉 後得智, 소지 - 중생이 본래 지닌 불성 ​ 眞性甚深極微妙 진성심심극미묘 참된 성품 깊고 깊어 지극히도 오묘하니 ..

법성게 2024.03.24

불교(법구경) 명언 모음

불교(법구경) 명언 모음 ★ 깨끗한 행실도 닦지 못하고, 젊어서 재물을 쌓아 두지 못하면 고기없는 빈 못을 속절없이 지키는 늙은 따오기처럼 쓸쓸히 죽어 간다. 또한 못쓰는 화살처럼 쓰러져 누워 옛일을 생각한들 무슨 수가 있겠는가. 거짓말을 하지 않고, 도리에 맞는 진실한 말만 하며, 함부로 말을 하여 사람들을 성내게 하지 않는 사람은 성자이다. 건강은 최상의 이익, 만족은 최상의 재산, 신뢰는 최상의 인연( 因緣 )이다. 그러나 마음의 평안보다 더 행복한 것은 없다.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은 죽음에 이르고, 애써 노력하는 사람은 죽는 법이 없다. 고운 꽃은 향기가 없듯이 잘 설해진 말도 몸으로 행하지 않으면 그 열매를 맺지 못한다. 꽃은 바람을 거역해서 향기를 낼 수 없지만, 선하고 어진 사람이 풍기는 향..

법구경 2024.03.24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에 대한 이해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은 불교의 대표적 보살인 보현보살(普賢菩薩)의 행원을 기록한 책이다. 안에 수록돼있으며, 한국에서는 보현보살의 행원을 특별히 중요하게 여겨 에서 분리해 별도의 책으로 간행, 유포했다. 은 부처님이 성도하신 후 삼칠일(혹자는 이칠일) 동안 설하신 경전으로 불교 사상의 최정수로 설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그 내용이 너무 방대하고 난해해서 보편적으로 읽혀지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화엄사상을 요약하는 게송이나 일부 품(品)이 별행본(別行本) 형태로 널리 유포되었는데, 의상대사(義湘大師)의 나 용수보살(龍樹菩薩)의 약찬게(略纂偈), 그리고 여기 「보현행원품」이 그 대표적 예라 하겠다. ​ 「보현행원품」은 화엄경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품으로, 선지식을 찾아 구도 여행을 마친 ..

화엄경 이야기 2024.03.24

아미산 <불교 용어 해설, ㄷ - 5>*대승불교(大乘佛敎)와 소승불교(小乘佛敎)의 차이

아미산 --------------------------------------------------------------- *대승불교(大乘佛敎)와 소승불교(小乘佛敎)의 차이---대승불교는 BC 1세기경 소승불교에 반대해서 일어난 개혁세력에 의해 성립되기 시작했으며, 많은 사람이 함께 하는 불교란 말이고, 승(乘)은 싣고 운반한다는 뜻이다. 소승이란 일체 중생이 모두 부처가 되기에는 너무 작고 보잘 것 없는 작은 수레라는 뜻으로 부파불교(아비달마 불교)를 지칭한 말이다. 당시 소승불교는 승려들만의 종교였음에 비해 불교를 널리 민중에까지 보급하기 위해 비교적 진보적 인사라고 할 사람들이 많은 사람이 탈 수 있는 큰 수레, 대승불교라는 기치를 내걸고 재가자를 포함시켜나갔다. 초기 대승불교 운동가들이 불교의 문제..

불교용어 2024.03.24

대승불교

대승불교 ​ 대승(大乘)은 소승(小乘)에 맞서는 말로, 커다란 승물(乘物, 탈 것) Maha-yana를 의미한다. 소승 즉 작은 hina 승물(乘物)이란 열등한 승물이라는 뜻이며, 대승불교가 처음 일어났을 때 그 이전의 모든 불교를 일괄하여 소승이라고 낮추어 부른 것이다. 따라서 소승교도 자신은 이 명칭을 인정하지 않는다. 대승불교가 뛰어나다고 하는 것은 진실한 깨달음에로 특정한 사람뿐만 아니라 누구나가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승불교는 그렇지 않다는 의미에서 열등한 것으로 여겨졌다. 대승의 길을 걷는 사람을 보살(菩薩)이라 하고, 소승의 길을 걷는 사람을 성문(聲聞) 및 연각(緣覺)이라 한다. 소승에는 이들 두 길이 있으므로 소승을 이승(二乘)이라고 한다. 대승에서 보면 이들 성문, 연각이라는 구별..

불교 2024.03.24

금강경 야보송

金 剛 經 冶 父 頌 【야보】 ○ 法不孤起라 誰爲安名고 ○ 法은 홀로 일어나지 않는다. 누가 이름 하였나? 摩訶大法王이여 無短亦無長이로다 本來非皂白이로대 隨處現靑黃이로다 花發看朝艶이요 林凋逐晩霜이로다 疾雷何太擊고 迅電亦非光이로다 凡聖元難測이어니 龍天豈度量이리오 古今人不識일새 權立號金剛이로다 크다 大法王이여, 짧은 것도 없고 또한 긴 것도 없는 것, 本來 검거나 희지도 않지만 어디에나 靑과 黃으로 나타나도다. 꽃이 피어 아침이 곱기도 해라 나뭇잎 시들어 늦서리 내렸도다. 천둥은 어찌 그리 크게 치는가. 빠른 번개도 역시 빛을 잃는구나. 凡夫 聖人도 측량키 어렵거니 天龍이 어찌 헤아릴 수 있으리오, 예나 지금이나 아는 사람 없어서 方便으로 금강(金剛)이라 이름 했도다. 如是여 古人이 道하사대 喚作如如인댄 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