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183

<불교 의식(儀式) 예불문>

​불교 사찰에서는 조석(아침⋅저녁)으로 예불을 올린다. 고려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 知訥)은 에서 ‘예불에 나아가되 모름지기 조석으로 근행해서 스스로 게으름을 꾸짖으며, 대중이 행하는 차례를 알아서 어지럽히지 말라’고 하셨다. 마음을 다잡고 정성 드려 하라는 말이다. 그래서 불교 의례는 군더더기가 없다. 깔끔하면서 무게가 있다. 그 순간 의례에 참여하는 불자들은 누구나 마음으로 나름의 다짐을 하게 된다. 그 의례의 순서를 보자. 아침예불의 순서를 살펴보면, 도량을 청정히 하는 도량석(道場釋)으로 시작된다. 사찰에서 새벽 예불 전에 도량을 청정하게 하기 위해 행하는 불교의식을 도량석이라 한다. ​――――도량석(道場釋)――――​도량석이란 말은 도량을 깨운다, 도량을 풀어준다는 뜻이다. 도량은 모든 불보살이 ..

불교 2024.10.20

발우공양에 담긴 뜻 / 구미래

특집 | 음식에 관한 불교의 가르침1. 발우공양의 유래와 전승​인간은 음식을 섭취해야 살아갈 수 있지만, 끼니를 해결하는 일 정도는 대부분 해결할 수 있게 된 지 오래다. 밥이 주식인 우리에게 ‘밥’은 ‘끼니’와 동의어이다. 생명을 유지하는 기본적이고 최소한의 물질이기에, 밥은 그것이 지닌 의미에 비추어 가장 신성한 동시에 가장 무심한 대상이다. 따라서 ‘밥을 먹는 일’에 대한 의미를 새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채, 그저 한 끼를 때우거나, 사교와 식탐이 풍성한 식탁 위에서 자유롭게 음식을 소비한다. 현대인이 바쁘게 살아가는 이유도 ‘나의 한 끼가 좀 더 풍요롭기를 바라는 것’과 깊이 연관되어 있을 듯하다. 그런데 인간이 지향하는 ‘풍요롭고 자유로운 식사’와 반대편에 놓인 ‘불편한 식사’가 있다. 그것은..

불교 2024.10.06

불교 4대성지와 8대성지 (부처님 4대성지와 8대성지)

부처님 4대성지와 8대성지 (불교 4대성지) 순례- 부처님 발자취를 찾아    불교, 부처님의 4대 성지  부처님의 4대 성지는 '열반경'에 부처님 말씀으로 정해진 것. 부처님이 입멸을 예고하자 슬퍼하던 제자 아난존자는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에 가르침을 받고 싶고 우러러 뵙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고 부처님에게 묻는다.  그때 부처님이 불자가 친견해야 하는 곳으로 ‘자신이 태어난 룸비니, 깨달은 보드가야, 처음 전법을 한 사르나트(녹야원), 그리고 입멸 쿠시나가르’ 4군데를 알려 준다. 그 곳을 찾아 예경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것. 이곳이 바로 부처님의 4대 성지   스님들이 발우공양할 때 외우는 게송 ‘불생가비라 성도마갈타 설법바라나 입멸구시라 (佛生迦毘羅 成..

불교 2024.10.06

선종과 교종 , 현재 한국의 불교종파

●禪宗과 敎宗​​1.선종(禪宗)​​■정의참선수행으로 깨달음을 얻는 것을 중요시하는 불교의 한 종파.​■내용조선 세종 때 모든 종파의 폐합에서 남은 두 종파 중의 하나이다. 1424년(세종 6) 예조의 지시에 따라 7종파를 선종(禪宗)과 교종(敎宗)의 두 종파로 폐합할 때, 조계종(曹溪宗)·천태종(天台宗)·총남종(摠南宗) 등 세 종파는 선종이란 이름으로 단일화되었다.​선종은 전국에 18개 사찰 및 4,250결(結)의 전답과 1,970명의 승려를 가지게 되었다. 사찰의 수는 교종과 같았으나 전답(교종 3,700결)과 승려의 수(교종 1,800명)는 교종보다 많은 편이었다.​선종은 흥천사(興天寺)를 도회소(都會所:總本寺)로 하여 모든 종무(宗務)를 집행하였다. 세종의 종단폐합 이후 성종 때에 척불정책이 심하였..

불교 2024.09.22

참회(懺悔, skt. Ksama)

참회(懺悔, skt. Ksama)> 육조 혜능(慧能) 대사는 에서 이렇게 말했다.“참(懺)이란 어리석고 교만하고 허망 되게 시기 질투한 죄를 뉘우쳐 지난날에 지은 악업을 다시는 더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회(悔)란 이 다음에 저지르기 쉬운 허물을 조심해 그 죄 됨을 미리 깨닫고 아주 끊어 다시는 짓지 않겠다는 결심이다.”라고 했다. ‘참((懺)’은 잘못된 것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고, ‘회(悔)’는 더 이상 이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참(懺)’은 과거의 죄를 뉘우치는 것이고, ‘회(悔)’는 앞으로 다가올 잘못을 미리 예방하는 것을 말한다. ‘참(懺)’이란 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깊이 깨닫고 반성하고 잘못을 뉘우쳐 용서를 비는 것, ‘회(悔)’란 과거의 죄를 뉘우치고 불..

불교 2024.09.08

마구니 [魔仇尼, Maguni]

마구니 [魔仇尼, Maguni] 마왕/마구니란 어떤 형상을 가지고 있는 귀신이나 도깨비가 아니라 우리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번뇌가 곧 마구니 (출처 : 실용 한-영 불교용어사전)   불교와 악마악마는…바로 ‘내 마음’속에 살고 있다​한국 축구응원단 붉은악마(red devils)가 기분 나쁘다고 해서 기독교 신자들이 새로운 이름의 응원단을 만들어 활동 중인 일화는 유명하다. 불교신자들은 아무렇지 않은 일을 기독교도들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처럼 악마(惡魔)는 기독교 전유물로 인식돼 있다. 국어사전은 악마를 ‘악 또는 불의를 의인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정의했다. 악의 탈을 쓴 인간이 악마라는 것이다. 악마의 반대는? 천사나 선인(善人)이라고 할 수 있다. 선과 악으로 나누는 이분법을 근본적으로 부정하..

불교 2024.09.08

사찰에는 왜 산신각(山神閣)이 있을까?

사찰에는 왜 산신각(山神閣)이 있을까? 작성자 최영근 선생님 역사가 오랜 우리나라의 경우 태초에 신교 즉 단군교가 있었고 다음에 불교가 들어왔다. 이런 경우 단군이 주신(主神)이 되고 부처는 객신(客神) 즉 손님신이 되는 것이다. 두 신은 한동안 서로 힘겨루기를 하다가 결국에 가서는 싸움을 멈추고 서로 손을 잡고 공존공생하기로 결심한다. 이것을 신불융화라 하는 것이다. 대웅전(大雄殿)이란 이름도 한국에만 있는 명칭인데 그 어원을 따져보면 환웅전(桓雄殿)이 대웅전이 되었으며 환웅은 단군의 아버지요 천신인 환인의 아들이다. 이 산신을 믿고 살아온 우리에게 손님신인 부처가 들어와서 자리를 빼앗았으니 이름이라도 ‘환웅전’으로 살려주겠다는 것이었다. ‘환’은 크다는 뜻이니 이를 큰 대자를 써서 대웅전이라 한 것이..

불교 2024.07.28

개경게(開經偈) 무상심심미묘법 백천만겁난조우

개경게(開經偈) 경전을 펴면서 외우는 게송무상심심미묘법 백천만겁난조우無上甚深微妙法 百千萬劫難遭遇가장높고 미묘하고 깊고깊은 부처님법백천만겁 지나도록 만나뵙기 어려우나 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가장높고 미묘하고 깊고깊은 부처님법더 이상 높은 것이 없는 최고의 깨달음`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 무상정변정각(無上正遍正覺)`범어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뜻하는데심지관경(心地觀經)에서는 장애를 깨뜨리고 해탈을 이루게 한다 하여 `파(能破)`어리석은 중생의 마음을 환하게 비추어 준다 해서 `능주(能呪)`지혜를 얻게 해주어 `능수(能收)기쁨을 맛보게 한다 하여 `희락(喜樂)`극락의 보배로운 사다리가 된다 하여 `보계(補階)`커다란 배로 열반의 언덕에 이르게 한다 하여 대선(大船)`탐진치 삼독(三毒)을 물리친다 하..

불교 2024.06.30

불상의 기원 및 유래

불상의 기원 및 유래​​보통 불교 관계 모든 일반상에 대하여 막연히 불상(佛像)이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자면 불상은 부처의 존상(尊像)에 한정되는 명칭이다. 그러므로 부처가 아닌 보살이나 제천(諸天), 명왕(明王), 불제자(佛弟子)상 등을 불 상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불교상이라고 부르는 것이 올바르다.​불교상 가운데 가장 먼저 만들어진 것은 제천상(諸天像)이며 범천(梵天), 제석천(帝釋天), 길상천(吉祥天)등은 불상이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고대 인도 조각 가운데 나타났었다. 그러나 이들은 불교상으로서 존재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교상에서 본다면 불상이 가장 먼저 만들어지고 다음에 보살상이 만들어졌으며 제천상을 비롯한 다른 불교상은 휠씬 이후에 만들어졌던 것이다.​불상 가운데서는..

불교 2024.05.05

대승불교

대승불교 ​ 대승(大乘)은 소승(小乘)에 맞서는 말로, 커다란 승물(乘物, 탈 것) Maha-yana를 의미한다. 소승 즉 작은 hina 승물(乘物)이란 열등한 승물이라는 뜻이며, 대승불교가 처음 일어났을 때 그 이전의 모든 불교를 일괄하여 소승이라고 낮추어 부른 것이다. 따라서 소승교도 자신은 이 명칭을 인정하지 않는다. 대승불교가 뛰어나다고 하는 것은 진실한 깨달음에로 특정한 사람뿐만 아니라 누구나가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승불교는 그렇지 않다는 의미에서 열등한 것으로 여겨졌다. 대승의 길을 걷는 사람을 보살(菩薩)이라 하고, 소승의 길을 걷는 사람을 성문(聲聞) 및 연각(緣覺)이라 한다. 소승에는 이들 두 길이 있으므로 소승을 이승(二乘)이라고 한다. 대승에서 보면 이들 성문, 연각이라는 구별..

불교 2024.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