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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또다른해석3/신이 죽지 않는 계곡

谷神不死 是謂玄牝 곡신불사 시위현빈 앞에서 말했지만 노자는 《도덕경》5천 글자를 통틀어 다른 사람들이 쓴 적이 있거나 널리 쓰이는 의미태의 고유명사를 단 한 개도 사용하지 않는다. 《도덕경》에 나오는 모든 의미태의 고유명사는 백 프로 노자의 오리지널 창작어들이다. 노자가 지어낸 단어들이어서 이런 고유명사가 뭔지를 사람들이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그 해석이 구구하고 중구난방 지멋대로다. 이런 조어(造語)의 능력이 뛰어나기로는 지나인보다는 오히려 고대 인도인이다. 불경을 읽어보면 말을 만들어내는 어휘력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문학적 가치만으로도 인류의 보고라 할 만하다. 특히 이름을 지어내는 데는 도가 텄다. 부처님한테 놀라는 게 바로 작명력이다. 온갖 대상 온갖 사물에 수천 수만 가지 이름을 만들어 붙이는..

<사조(四祖) 도신(道信, 580~651) 대사 이야기>

---간심법문(看心法問)과 수일불이(守一不移)--- 중국 선종 제4조 도신(道信) 대사의 속성은 사마(司馬)씨이고, 태어난 곳은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심양현(沁陽縣)이다. 스님은 7살에 출가했다. 그러나 스승의 계행(戒行)이 단정하지 못해, 섬기기는 하나 미진함을 느끼던 중, 14세에 사미의 몸으로 당시 환공산(晥公山-지금의 天柱山)에 은거하고 있던 3조 승찬(僧璨, ?~606) 대사를 찾아가, 절하면서 말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그대는 지금 무슨 마음인가?” “무심(無心)입니다.” “그대가 무심이라면 부처님께서는 무슨 마음이었겠느냐? “화상이시여, 자비를 베풀어 해탈하는 법문을 일러주소서.” “누가 그대를 속박했다는 말인가?” “아무도 속박한 이가 없습니다.” “아무도 속박한 이가 없다면 그대..

선의 세계 2022.12.18

고인들에게 바치는 글(弔辭)

영가(靈駕)여! 하도 어처구니 없는 사고(事故)에 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마디 위로(慰勞)도 할 수 없습니다. 그 참담(慘憺)한 현실 앞에서 어떤 말이 위로(慰勞)가 되겠습니까? 그저 망연자실(茫然自失) 할 뿐입니다. 그 일은 당신의 책임(責任)이 아닙니다. 여기 남아 있는 못난 어른들 때문입니다. 죄인(罪人)은 타성(惰性)에 젖어 위험(危險)에 잠들어 있던 어른들입니다. 그래서 더욱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정신(精神)을 차려보니, 당신은 우리 곁을 떠난 바 없습니다. 아니 오신 바도 없는데, 어찌 떠날 수가 있겠습니까? 본래 당신은 오고가는 존재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영가(靈駕)여! 당신은 본래(本來) 몸도 마음도 아닙니다. 그저 고금(古今)을 통한 소소영영(昭昭靈靈)한 존재입니다..

선의 세계 2022.12.18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44.몽초인홍 - 어려움 만나면 정성껏 기도하며 헤쳐가라

[근현대 선지식의 천진면목] 44.몽초인홍 어려움 만나면 정성껏 기도하며 헤쳐가라 일제강점기 통도사의 대강백으로 명성을 떨쳤던 몽초인홍(夢草仁弘, 1870~1947)스님은 후학들을 제도하며 외길을 걸었던 수행자이다. 속성을 붙여 ‘허몽초’로 널리 알려진 스님의 행장은 그 명성에 비해 전해져 오는 내용은 극히 일부이다. 몽초스님의 수행일화를 상좌 화산(華山, 대구 보광선원 조실)스님의 증언과 등을 참고해 정리했다. “어려움 만나면 정성껏 기도하며 헤쳐가라” 근세 통도사 대강백으로 ‘명성’ 내외전과 참선 교학 두루 경비 ○…몽초스님의 본래 법명은 인홍(仁弘)이다. 은사가 누군지 정확하지 않지만, 주로 주석했던 통도사 자장암과 인연 있는 스님일 것으로 추정된다. 인홍이란 법명은 출가 당시 은사에게 받은 것이며..

법화경(묘법연화경)해설 제2품 방편품 해설

方便品 第二 爾時世尊이 從三昧安詳而起하사 告舍利弗하사대 諸佛智慧는 甚深無量이시고 其智慧門은 難解難入이라 一切聲聞辟支佛의 所不能知니라 所以者何오 佛曾親近百千萬億無數諸佛하사 盡行諸佛無量道法하야 勇猛精進하야 名稱普聞하며 成就甚深未曾有法하야 隨宜所說이 意趣難解니라 舍利弗아 吾從成佛已來로 種種因緣과 種種譬喩로 廣演言敎無數方便하야 引導衆生하야 令離諸著하노니 所以者何오 如來는 方便知見波羅密을 皆已具足이니라 舍利弗아 如來知見은 廣大深遠하사 無量無礙와 力無所畏와 禪定解脫三昧에 深入無際하사 成就一切未曾有法하니라 이시세존 종삼매안상이기 고사리불 제불지혜 심심무량 기지혜문 난해난입 일체성문벽지불 소불능지 소이자하 불증친근백천 만억무수제불 진행제불무량도법 용맹정진 명칭 보문 성취심심 미증유법 수의소설 의취난해 사리불 오종성불이..

법화경 알기 2022.12.18

유교는 왜 중용을 강조하는가 / 최일범

특집 | 중도의 철학, 양극화 극복의 길 1. 시작하는 말 필자가 이 글을 쓰게 된 배경은 이렇다. 지금 극단적 대립과 갈등의 재생산으로 혼란한 한국사회의 병폐를 치유하려면 ‘절제와 양보의 중도철학의 정신’이 필요하니 동 · 서양의 중도, 중용 철학을 통틀어 논의해 보자는 것이다. 이 제안에 필자는 동의한다. 그러나 혹시 중도, 중용 철학을, 사회적 갈등이 극단화되는 특수한 상황에 직면한 당사자들이 상호 ‘절제와 양보’를 요구하는 특수한 처방쯤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을까 노파심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중도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것이 아니다. 특히 선거철만 되면 중도 정치를 표방하는 정치인이 등장한다. 그런데 중도 정치를 바라보는 일반적 시선은 별로 호의적이지 않은 듯하다. 대립 갈등하는 양극단..

기타 2022.12.18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 16. 퍼지는 가르침 ② 바이샬리 코삼비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 16. 퍼지는 가르침 ② 바이샬리 코삼비 불교는 ‘과거’…유적지엔 ‘바람’만 가득 부처님 당시 쉬라바스티와 함께 불교가 확산된 대표적 도시가 라자가하(현재의 라즈기르)였다. 〈마하박가〉에 의하면 사라풋타·목갈라나가 귀의한 후, 라자가하의 여러 가문의 자제들이 차례로 출가, 부처님을 모시고 청정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쉬라바스티의 경우처럼 라자가하의 이교도들도 보고 있지만 않았다. 이교도들 조직적으로 비구 비방 그래서 그런지 이상한 말들이 라자가하 거리에 돌았다. 부처님도 소식을 듣고, 말했다. “비구들아, 그 소리는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오직 7일간 떠돌다, 7일 지나면 사라질 것이다. 비구들아, 그대들은 다음과 같이 답하거라. ‘위대한 영웅이신 여래께서는/ 오직 정법으로 ..

24. 봉축행사 없는 불탄절

붓다 가르침 바른 이해와 실천이 진정한 ‘봉축’ 예전 봉축 주간엔 부처님오신날 현수막과 장엄탑으로 봉축 고조 남방불교에선 떠들썩한 축제보다는 내면적 봉축과 분위기 높아 부처님 이 땅에 나툰 의미 되새긴다면 거룩한 불사 아닐 수 없어 예전 이맘때쯤이면 길거리에 ‘부처님오신날’이라는 현수막이 펄럭이고, 봉축탑이 설치되는 등 초파일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세상에 알렸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19로 불탄절 봉축행사가 윤4월8일로 연기되었다. 불탄절 봉축행사가 한 달 연기된 것은 한국불교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6・25 전쟁 중에도 불탄절 봉축행사는 그대로 진행되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전쟁보다 더 무서운 전 지구적 재앙임을 실감하게 된다. 세계적 대유행(pandemic)이 가져다준 현상이다. 살면서 이런 일을 겪을..

베트남, 불타는 바다에서 핀 연꽃

특집 | 불교, 거듭 평화를 말하다 - 평화를 위한 틱낫한의 제안 여는 말: “모든 것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불교는 평화의 종교다. 하지만 불교는 평화의 때, 평화의 땅에서 시작하지 않았다. 붓다가 살았던 시대에는 경쟁하던 도시왕국들 사이의 전쟁이 격렬했다. 특히 무기와 전술이 급격히 발달하면서 전쟁은 이전보다 더 파괴적 양상을 보였다. 전쟁 동안 인간을 죽이는 물리적 폭력은 전쟁 후에는 인간을 비인간화하는 제도적 폭력으로 이어졌다. 리처드 곰브리치는 초기 베다 사회의 노예는 ‘전쟁포로’였을 거라고 추정한다. 붓다의 가르침을 담은 경전에 폭력이 자주 언급된 것도 그런 시대상을 반영할 것이다. 그렇게 보면, “모든 존재가 폭력에 떤다”는 《법구경》의 구절은 존재론적 고통의 통찰만이 아니라 사회적 고통의 ..

불교관련 2022.12.18

법성게 해설

법성게 해설 法性圓融無二相하니 諸法不動本來寂이라 법성원륭무이상 제법부동본래적 無名無相絶一切하니 證智所知非餘境이니라 무명무상절일체 증지소지비여경 법성은 제불중생의 본각진성이요 일체만법의 근본체성으로 본래가 평등하여 二相이 없으니 그 진성 자체위에는일체만법이 본래 없어 공적한지라 무어라 名目을 부쳐서 이름할 수도 없고 그 형용이 보이지 아니하니 그 모양이 어떠하다고 설명할 수도 없으니 이와같은 진성의 경계는 깨쳐서 증득한 佛의 智로 아는 것이지 다른사람의 경계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二相 佛과 衆生 - 깨달음과 미몽 - 凡과 聖 - 법부와 성인- 眞如本體와 現相生滅 - 사람의 근본마음과 같이 보이지는 않으나 중심에 자리하고 있으며 바탕을 이루고 불변하는 것과 현실에 나타내 보이는 외형으로 변화하는 것 眞性..

법성게 2022.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