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스님들 이야기 169

초의선사

스님의 법명은 의순(意恂)이고 자(字)는 중부(中孚)이며 법호는 초의(草衣)또는 일지암(一枝庵)이라 불리웠으며 성씨는 장(張)씨이다. 어머니가 꿈에 큰 별이 품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잉태하였다고 하며 조선 정조 10년(丙午, 1786) 4월 5일 전남 나주군 삼향면(三鄕面)에서 태어났다. 5세 무렵, 강변에서 놀다가 급류에 떨어져 죽게 되었을 때 마침 인근사찰의 어느 스님에 의해 구원되어 목숨을 건졌다. 그 스님이 출가할 것을 권함에 따라 16세 되던 해에 남편 운흥사(雲興寺)로 들어가 벽봉민성(碧峰敏性) 스님을 은사로 하여 머리 깎고 스님이 되었다. 뒷날 대흥사 완호(玩虎)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고 초의(草衣)라는 법호를 받는다. 초의 스님은 19세때, 월출산에 올라가 마침 해가 지면서 보름달이..

진표율사

승려 진표는 완산주 사람이다. 아버지는 진내말, 어머니는 길보랑이며 성은 정 씨이다. 나이 12살 때에 금산사의 숭제 법사의 강석 밑에 가서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배우기를 청했다 스승이 그에게 말했다. "일찍이 나는 당나라에 들어가서 선도 삼장에게 배운 뒤에 오대산에 들어가 문수보살 현신에게서 5계를 받았다." 이에 진표가 아뢰었다. “부지런히 수행하면 얼마나 되면 계를 얻게 됩니까?" 정성이 지극하다면 1년을 넘기지 않을 것이다." 스승의 말을 들은 진표는 명산을 두루 찾아다니다가 선계산 불사의암에 머물면서 삼업을 닦아서 망신참법으로 계를 얻었다 그는 처음 7일 밤을 정하여 오륜을 돌에 두들겨서, 무릎과 팔뚝이 모두 부서지고, 낭떠러지로 피가 비 오듯 했다 그래도 아무런 부처의 감응이 없자 몸을 버리..

담징(曇徵) (579~631)

담징(曇徵) (579~631) 고구려 후기의 승려, 화가로 일본에 불법과 미술을 전하여 주었다. 오경(오경)에도 능통했고, 그림에도 능했다. 담징은 고구려의 승려이자 화가로서 학문과 그림 솜씨가 뛰어났다. 일본 의 초청으로 610년(영양왕 21년)에 백제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 종이· 먹·공예·채색 등의 기술을 전하였 으며 연자매와 맷돌 등을 만들어 일 본의 문화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또한 일본의 호류사(法隆寺)라는 절에 머무르면서 일본 스님 호죠(法定)와 기거를 함께하며 불법과 학문 을 가르쳤다. 당시 고구려는 수나라와 전쟁을 치르고 있던 중이라 그의 마음은 매우 혼란스러웠는데, 고구려가 크게 승리했다는 소식을 듣자, 감사와 기쁨 의 마음으로 호류사의 금당에 를 그렸다. '금당 벽화'로 더 잘 알려..

의상대사(義湘大師) (625∼702)

의상대사(義湘大師) (625∼702) 신라시대의 고승(高僧). 우리나라 화엄종(華嚴宗)의 개조(開祖). 성은 김씨. 한신(韓信)의 아들이다. 19세 때(29세에 출가하였다는 설도 있으나, 최근의 고증을 따랐음.) 경주 황복사(皇福寺)에 출가하였다. 얼마 뒤 중국으로 가기 위하여 원효(元曉)와 함께 요동(遼東)으로 갔으나, 고구려의 순라군에게 잡혀 정탐자로 오인받고 수십일 동안 잡혀 있다가 돌아왔다. 10년 뒤인 661년(문무왕 1) 귀국하는 당나라 사신의 배를 타고 중국으로 들어 갔다. ​ 처음 양주(揚州)에 머무를 때 주장(州將) 유지인(劉至仁)이 그를 관아에 머무르게 하고 성대히 대접하였다. 얼마 뒤 종남산 지상사(至相寺)에 가서 지엄(智儼)을 청하였다. 지엄은 전날밤 꿈에 해동(海東)에 큰 나무 한..

[야운스님] 자경문(自警文)

주인공아! 나의 말을 들어라. 수 많은 사람들이 공허로운 문( 空門 ) 안에서 도를 얻었지만 너는 어찌하여 이토록 오랫동안 괴로움 속에서 전전하고 있는가? 너는 시작함도 없는 예전부터 금생에 이르기까지 깨달음을 등지고 세상의 티끌에 부합한 채 어리석고 어리석은 지경에 떨어져 항상 여러 악업을 지어 삼도( 三途 )의 괴로운 수레바퀴 아래로 들어갔으며 모든 선업을 수행하지 않았기에 사생( 四生 )의 업바다로 빠진 것이다. 신체는 여섯 도적(六賊 )을 따른 까닭에 언제나 악취에 떨어지니 곧 지극히 고통스러운 것이며, 마음은 일승( 一乘 )을 등진 까닭에 언제나 사람의 길로 태어나도 곧 부처님의 이전이거나 이후인 것이다. 금생에도 다행히 사람의 몸을 얻었으나 때는 바야흐로 부처님 이후의 말세이니 오호 애통하도다..

[성철스님] 삶에는 정답이 없다.

삶에는 정답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삶에서의 그 어떤 결정이라도 심지어 참으로 잘한 결정이거나 너무 잘못한 결정일지라도 정답이 될 수 있고 오답도 될 수 있는 거지요. 참이 될 수도 있고 거짓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정답을 찾아 끊임없이 헤매고 다니는 것이 습(習)이 되어 버렸습니다. 정답이 없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모두가 정답이 될 수도 있고 모두가 어느 정도 오답의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지나온 삶을 돌이켜 후회를 한다는 것은 지난 삶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정답이 아니었다고 분별하는 것입니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이 자리가 정확히 내 자리가 맞습니다. 결혼을 누구와 할까에 무슨 정답이 있을 것이며 대학을 어디를 갈까에 무슨 정답이 있겠고 어느 직장에 취직할까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