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38. 불립문자(不立文字) 11 앞의 글에서, 세상의 통합성, 즉 불이적인 이치에 대한 내면의 체험은 언어로는 온전하게 표현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아예 침묵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유마힐(維摩詰)이 무생법(無生法)에 대해 침묵으로 설법한 것이 유명한 한 예이다. 그 자리에 있던 청중 5천 .. 선의 세계 2018.08.26
[스크랩] 37. 불립문자(不立文字) 10 우리는 의사전달을 위해서 말과 글뿐만 아니라 각종 소리와 기호, 몸짓 등 온갖 도구를 편리하게 사용한다. 인류가 갖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만물의 영장 노릇을 할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 크다. 경험과 지식을 널리 공유하고 대대손손 전달하며 축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 개체,.. 선의 세계 2018.08.26
[스크랩] 36. 불립문자(不立文字) 9 앞의 글에서, 글이라는 시각적인 장치는 의식을 분절화시키고 타자화하는 속성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불이적(不二的)인, 즉 통합적인 세계관의 내면화를 강조하는 고전종교의 입장에서는, 그 이상을 표명하고 전달하고 달성하는 데에 글이라는 것이 마땅치 않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 선의 세계 2018.08.19
[스크랩] 35. 불립문자(不立文字) 8 우주 만유를 다 포용하고 수렴하는 그 어떤 하나의 궁극적인 원리, 진리를 천명한 것이 고전사상과 고전종교 태두들의 공통점이라고 하였다. 또 하나 중요한 공통점은 그 궁극적인 원리를 개개인이 내면화할 것을 강조했다는 데 있다. 적어도 개개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선의 세계 2018.08.19
[스크랩] 34. 불립문자(不立文字) 7 그러니까 글쓰기, 문자문화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비판을 보면, 우선 글쓰기는 인간 정신 내면의 일을 외부에다가 사물화(事物化), 객체화(客體化)시킨다는 점을 못마땅해 한다. 그리고 말은 사람과 사람이 대면하는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사유의 소통이어서 그나마 좀 나은데, 글은 그러.. 선의 세계 2018.08.19
[스크랩] 33. 불립문자(不立文字) 6 문자사용, 글쓰기, 글 읽기는 이미 철저하게 우리의 생활방식에 속속들이 스며들어있다. 우리는 문자를 사용하지 않고 살아가는 방식은 짐작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인류 문화사에는 분명히 그런 시절이 있었다. 문자가 보편적으로 쓰이기 이전에도, 문자가 발명되기 이전에도, 말과 문자.. 선의 세계 2018.08.12
[스크랩] 32. 불립문자(不立文字) 5 칼 야스퍼스가 ‘축(軸)의 시대’라고 일컬은 고전문명의 형성기, 즉 서력기원전 5세기 앞뒤로 각각 3세기 정도에 걸친 시기에 등장한 위대한 사상가와 종교적 선지자 가운데에는 글을 남기지 않은 이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앞의 글에서 했다. 그들의 사상과 언행은 뒤에 제자나 제자의 .. 선의 세계 2018.08.12
[스크랩] 31. 불립문자(不立文字) 4 석가모니는 저술을 남기지 않았다. 대각(大覺)을 이룬 뒤 45년 동안 많은 설법을 했고 그것이 후세에 경전으로 편찬되었지만 그가 직접 글을 써서 남기지는 않았다. 아예 글을 쓰지 않았는지 아니면 쓰기는 했는데 보존되지 않았는지, 어느 쪽인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 아무튼 불교 문.. 선의 세계 2018.08.12
[스크랩] 30. 불립문자(不立文字) 3 앞에서, 불교에서는 언어를 불신한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그 이유는 언어라는 것이 분별의 기제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했다. 분별이 왜 문제가 되는가? 불교의 입장에서 보면 세상 온갖 문제가 궁극적으로는 분별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을 보면 분별을 하지 않.. 선의 세계 2018.08.05
[스크랩] 29. 불립문자(不立文字) 2 언어는 워낙 분별의 기제라는 것이 불교의 언어관이다. 게다가 그 분별은 진상을 충실히 가려내는 분별이 아니라 우리의 탐욕이 반영된 자의적인 분별이라고 본다. 더욱이, 일단 어떤 사물에 자의적인 분별을 담은 말을 갖다 붙으면 우리는 그만 그 말에 휘둘려서 그 말을 통해서 사물을 .. 선의 세계 2018.08.05